구제역 백신 맞고도 항체 19%뿐 … 물 백신? 잘못 접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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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가 구제역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한 6일 충북 보은군의 한 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한 젖소를 매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가 구제역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한 6일 충북 보은군의 한 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한 젖소를 매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5일 충북 보은 젖소 농장에서 검출된 구제역 바이러스가 과거 국내에서 발생한 것과는 다른 유형으로 확인됐다.

정부 “소 평균 항체 생성률 98%”
충북도 “접종 매뉴얼대로 안 한 듯”

보은 바이러스, 국내 첫 발견된 변종
기존 백신 효과 있는지 조사하기로

전북 정읍 한우농가서도 구제역
첫 전국 규모 소·돼지 이동 중지령

6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보은 젖소 농장에서 검출된 바이러스를 분석했더니 이전 국내에서 번졌던 것과 혈청형(O형)이 같았지만 세부 유전자 유형이 달랐다. 방글라데시·태국·베트남 등지에서 최근 발생한 바이러스의 유전자형과 99.4% 수준으로 비슷했다. 국외에서 새로 유입된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농식품부는 이 바이러스의 정확한 유입 경로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기존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접종 중인 백신이 통하는 유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국내에서 사용되는 백신이 이번에 검출된 바이러스에 실제로 유효한지 적합성을 검사해 보겠다”고 전했다.

이날 전북 정읍시 한우농가에서 또 구제역이 발생했다. 농식품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7일 자정까지 우제류(소·돼지 등) 가축농가와 관련 시설 종사자, 차량에 대한 일시이동중지(스탠드스틸) 명령을 내렸다. 구제역으로 전국 규모의 스탠드스틸 명령이 내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제역 위기단계는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됐다. 위기 4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 가운데 둘째로 높은 수위다. 13일 자정까지 충북과 전북 지역의 소·돼지를 다른 시·도로 반출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천일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보은과 100㎞ 이상 떨어진 정읍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해 전국으로 확산할 우려가 있다”며 “조기 차단을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방역 당국은 이번에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보은의 젖소 농가에서 백신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충북도가 5일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보은군 마로면 농가의 젖소 21마리를 표본 조사한 결과 4마리(19%)에서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 농식품부는 정상적으로 접종을 한 소의 항체 형성률은 지난해 12월 기준 97.5%, 돼지는 75.7%라고 밝혔다.

윤충노 충북도 농정국장은 “보은의 구제역 발생 농가는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 백신 접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 농가가 매뉴얼을 따르지 않는 등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 국장은 “주사를 비뚤게 놓거나 주사를 놓기 전 약제를 여러 번 흔들지 않았을 가능성, 그리고 백신 관리를 못해 약이 듣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반론을 제기한다. 효과가 거의 없는 ‘물 백신’ 접종 가능성이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기존의 백신이 잘 듣지 않는 변종 바이러스라면 더 많은 농장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물 백신’이든 정부와 농장의 허술한 접종 관리든 구제역 방역망이 뚫린 게 사실이라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구제역은 소나 돼지 같이 발굽이 둘로 갈라진 가축에게서 발병한다. 공기로도 쉽게 전파될 만큼 전염성이 강하다. 감염된 소·돼지는 폐사하지 않더라도 곳곳에 생긴 물집 때문에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2010~2011년 구제역이 대유행했을 땐 국내 소 사육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피해가 컸다. 당시 정부는 살처분 보상금, 소독 비용, 생계 지원 자금 등으로만 2조8695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최초 발생지, 이동경로 등 철저 방역을”

3281만 마리의 가금류 살처분(5일 기준) 피해를 낸 조류인플루엔자(AI)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전북 김제시 소재 한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에서 고병원성 AI 의심 신고가 있었다. 지난달 24일 이후 13일 만의 추가 신고로 AI 기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은 상태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신속한 스탠드스틸도 중요하지만 이 조치의 원래 목적을 잊어선 안 된다”며 “구제역 최초 감염원, 이동 경로, 추가 전파 가능성을 철저히 조사해 차단 방역에 나서야 대규모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백신 접종을 한 소는 보통 우유 생산량이 줄거나 사료를 덜 먹는 증상을 보이는데 이 때문에 접종에 소홀한 농가가 있을 수 있다”며 “백신 접종에 대한 엄정한 실태 조사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현숙 기자, 세종·정읍·보은=이승호·김준희·최종권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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