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어느 청각장애인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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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7일 2명의 인명사고를 낸 서울 종로구 건물 붕괴 현장은 휘장으로 둘러싸여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인근 포장마차 주인은 “죽은 사람만 불쌍하죠. 하청에 재하청을 줘서 인력이 부족했을 거예요”라고 나름대로 원인을 추정했다. 숨진 인부 김모(61)씨는 청각장애인이다. 예순 넘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렸다. 현장에 가봤자 아무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엊그제 발길이 거기로 향했다. 그의 가족은 빈소에서 “젊어서 벽돌공장에서 일했고 평생 노동일을 했다. 30년 전 청각장애가 생겼다”고 말했다. 장애가 사고 당시 피할 수 있는 사망을 막지 못한 게 아닐까.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건물이 순간적으로 무너졌다”고 말한다. 누구라도 같은 결과였을 거라는 얘긴데, 그래도 우울이 가시지 않았다.

후진국형 사고가 나면 장애인이 희생양이 된다. 지난달 15일 새벽 광주광역시에서 청각장애인 미화원(56)이 청소 도중 음주운전 차에 치여 숨졌다. 달려오는 차량 소리를 듣지 못했을지 모른다. 안전장비는 야광조끼가 거의 유일했다. 의사소통이 불편했지만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고 부부 금실이 그리 좋을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 10년 새 폭우·폭설 등의 자연재해나 화재·가스폭발·열차사고 등의 사회적 재난에 희생된 장애인이 20명이 넘는다. 알려진 게 이 정도다. 청각장애인은 돌발상황 초기 인식이 쉽지 않아 대응이 어렵다. 그래서 시각·후각·촉각 등을 이용한 경보체계가 필요하고 경광등·비상조명을 활용해야 한다(보건복지부 연구자료).

하지만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를 보면 재난 매뉴얼을 소지한 청각장애인은 3.1%다. 그나마 자연재해 매뉴얼은 있지만 사회적 재난은 없다. 매뉴얼 보급과 교육·훈련이 절실하다. 소방공무원 수어(手語) 교육도 필수다. 재난 알림 진동 베개, 스마트 시계 등의 정보기술(IT)도 활용해야 한다. 독일은 미니 휴대전화가 장착된 손목시계의 비상버튼을 눌러 도움을 청한다. 또 재난 시 시계에 진동이 울린다.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24만원(전국가구 415만원, 2014년). 장애 때문에 월 16만원이 더 든다. 김씨도 이런 상황 때문에 위험한 일터에 나갔다 변을 당했을 게다. 누가 이들을 대변하나. 20대 국회에는 장애인 비례대표 의원이 아예 없다. 복지예산이 10년 새 약 배가 됐지만 장애인 예산은 올해 복지예산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2017년 대선의 장이 섰다. 이번만이라도 장애인을 챙겼으면 좋으련만.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