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100일 달라진 풍경들
눈물·웃음·꼼수·냉소.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김영란법) 시행 100일(5일)이 지난 요즘 볼 수 있는 4가지 세태다. 고급 음식점과 화훼·한우농가 등을 중심으로 서민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음식 맛이 좋고 저렴한 일부 업소에는 손님이 몰리고 있다. 음식점에서는 밥값 대신 ‘외식카드’를 만들어 파는 등 꼼수도 등장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대통령도 안 지키는 법을 서민들이 왜 지켜야 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한우식당 매출 77% 줄어든 곳도
난 재배 농장은 호박밭으로 바꿔
벌써 문 닫은 업소도 많다. 서울 서소문의 고급 음식점인 남강도 지난해 12월 31일 폐업했다. 1975년 문을 열어 40여 년간 영업해 온 남강은 등심·불고기 등이 주메뉴였다. 유이상(65) 전 남강 매니저는 “김영란법 이후 단체손님이 줄면서 하루 매출이 종전의 절반(400만~500만원)도 안 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인근 상가인 ‘세종 1번가’의 상가 1층엔 ‘임대 안내’라고 쓰인 딱지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상가 전체 중 약 30%의 매장이 비어 있었다. 음식점 사장 김모(55·여)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저녁에 고객이 아예 없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국내 외식업 연말 특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외식업체 709곳의 지난해 12월 평균 매출은 2015년 같은 기간에 비해 36% 줄었다.
공직사회 인사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축하 난(蘭)도 사라졌다. 올 1월 1일자로 승진한 대전시청 A국장은 축하 난을 3개 받았다. A국장은 “전임 국장들은 적어도 70개 이상 화환이나 난을 받았는데 난 구경하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취임한 부산 지역 B경찰서장은 축하 난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대전시청 주변 꽃가게 주인 신경호씨는 “김영란법 이후 난 매출이 80% 줄었다”고 말했다. 난 재배농가도 업종을 전환하고 있다. 부산시 강서구의 강산난원 서재환 대표는 지난해 12월 농장 9256㎡ 가운데 2644㎡를 호박밭으로 바꿨다.
1만5000원 정식 음식점은 대박
공무원 술자리 줄어 ‘저녁 있는 삶’
직장인들은 술자리나 회식이 줄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됐다며 반기고 있다. 경기도청 김모(55) 사무관은 “일찍 귀가해 아내와 걷기 등 운동을 주로 한다”고 말했다.
일부 한정식집 5만원 기프트카드
식사 3만원 상한 교묘히 피해가
밥값을 여러 차례 나눠 결제하는 쪼개기 결제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대전청사 공무원은 “1인당 3만원이 훌쩍 넘는 소고기 메뉴로 회식하려면 2~3차례 정도 음식 값을 분할해 미리 결제한다”고 말했다.
“기득권 수백억 비리 저지르는데
선물값 5만원에 상인들 망하겠다”
전문가 “중소상인 피해 막아야”
황교안, 식대 상한액 완화 검토 지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 5개 부처 업무보고에선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식대와 선물 금액 상한선을 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전·인천·수원·부산·세종=김방현 최모란·김민욱·이은지·이승호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