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생활 물가 어쩌나, 맥주까지 6%…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연말 ‘장바구니 물가’ 시름

오비맥주에 이어 하이트진로도 맥주 가격을 27일부터 평균 6.3% 올린다. 서민 생활과 밀접한 제품의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는 것이다. 22일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맥주를 고르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오비맥주에 이어 하이트진로도 맥주 가격을 27일부터 평균 6.3% 올린다. 서민 생활과 밀접한 제품의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는 것이다. 22일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맥주를 고르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경기도 일산에 사는 주부 김승희(36)씨는 21일 저녁 찬거리를 사러 대형마트에 들렀다가 ‘물가 오름세’를 실감했다. 한 달 새 계란은 한 판(30개)에 1000원이 올랐고, 대파도 한 봉지에 700원 더 비쌌다. 양배추도 800원이 뛰었다. 지난달 가계부와 꼼꼼히 비교해 보니 같은 물건을 사는 데 한 달 전에 비해 평균 20% 정도 돈이 더 든다. 김씨는 “특별한 반찬을 만드는 게 아닌데도 부담이 될 만큼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빵·라면·화장품·가스요금…
혼란 정국에 슬그머니 인상
기재부 “가격 담합 등 감시”

장바구니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22일 맥주 값을 6.3%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7일부터 하이트(500ml)와 맥스(500ml)는 병당 1079.62원(공장 출고가)에서 1146.66원으로 67.04원 가격이 인상된다. 오비맥주가 지난달 가격을 6% 올렸고, 롯데주류까지 가격 인상에 나서면 사실상 국산 맥주는 모두 가격이 오른다.

가격 인상 행렬은 지난달부터 본격화됐다. 지난달에만 코카콜라가 탄산음료 값을, 로레알그룹이 에센스·립스틱·크림 등 화장품 가격을 평균 5~6% 올렸다. 이달 들어서만 빵·라면 값이 오르더니 맥주 값도 올랐다.

가격 인상 이유는 한결같다. ‘임차료·인건비·물류비 등 관리비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조치’다. 원자재에 대한 언급은 꺼린다. 예컨대 빵과 라면의 주요 재료 중 하나인 밀가루의 원료(소맥) 가격은 지난 5년간 하락세를 보인 까닭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라면의 원재료비를 따져 본 결과 지난 5년간 19.8% 하락했다”고 밝혔다. 올 8월부터 국제 밀가루 가격은 12% 정도 올랐지만 전문가들은 “원자재 값 상승을 가격 인상 이유로 들기에는 시차가 너무 적다”고 지적한다. 제과·제빵업계 관계자는 “빵 값의 경우 밀가루 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품 가격은 원자재 값보다는 다른 요인에 좌우되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독 지난달부터 업체들이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서자 그간 정부의 ‘창구 지도’ 때문에 섣불리 가격을 올리지 못했던 업체들이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정국 불안을 틈타 줄줄이 인상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종인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대개 기업들이 새해 경영 목표를 세우면서 연말에 제품 가격 조정에 나서는 성향이 있지만 최근 정국 혼란 여파로 정부의 물가 관리가 느슨해진 것도 업체들이 가격을 올린 요인”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장바구니 물가 인상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의 영향으로 계란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상승 중이다. 대형마트를 기준으로 지난 2주 새 계란 한 판(30개) 값은 평균 17% 올랐다. 이마저도 ‘1인 1판’만 살 수 있다. 여기에 주요 산지인 제주도의 태풍 피해로 월동 채소 가격이 치솟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비 무·양배추·당근·브로콜리 등이 평균 2~3배 올랐다.

내년 1월엔 도시가스·난방 요금도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가스공사가 산업통상자원부에 ‘도시가스 연료비 인상 승인 요청’을 할 계획이다. 모두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된 항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물가 상승률을 올해보다 높은 1.3%로 내다봤다.

한국은행과 함께 물가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도 속 타기는 마찬가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라면에 이어 맥주 가격 상승까지 주요 소비품목의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과거처럼 가격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며 “기업에 직접 가격 인하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할 위법사항”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격 담합 등의 요소가 없는지 감시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 계란 매점매석 조사=농림축산식품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계란 가격 오름세와 관련해 중간상인의 매점매석 혐의를 조사할 계획이다. <본지 12월 22일자 8면>

이천일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중간유통업자의 매점매석 행위에 대한 지적이 있어 공정위와 공동 조사를 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란계(알 낳는 용도로 기르는 닭)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이 소비자 손에 들어가기까지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친다. 정부는 계란을 공급받는 수집판매상을 비롯한 중간유통업자들이 AI로 인한 공급 부족 사태를 틈타 폭리를 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글=최현주·조현숙 기자 chj80@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