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학교에서는…(44)극성엄마 욕심이 빗나가게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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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IQ 1백40짜리가 노상꼴찌를 맴돈다면 믿으시겠어요?』
지난 5월초순. 중년 부인A씨(45)가 딸(16)과 함께 Q 심리상담실을 찾았다.『연합고사성적이 형편 없어 시내 인문계고교에 못가고 경기도로 좇겨날 정도였으니…』
A부인은 화가 치밀어서 못견디겠다는 말투다. 자존심이 상해서 못견디겠다는 듯한 A부인옆에 서양은 사춘기의 발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풀죽어 있었다.
『이 애가 국민학교때까지는 남편의 박사(의학)과정 뒷바라지로 여념이 없었어요. 그러나 그뒤 중학교 입학후에는 내 생활을 모두 희생하고 자녀교육에 관한 강좌는 모두 들어가며 배운대로 온갖 정성을 다했건만, 그럴수록 성적은 오히려 더 떨어지니….』
영문을 모르겠다며 A부인은 딸을 상담실에 맡겼다.
그러나 상담원 C씨(47)로서는 정작 심리치료를 받아야할 「환자」는 서양보다 오히려 A부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엄마가 직장이라도 가졌으면 차라리 좋겠어요.』 서양에게 가장 큰 문제는 A부인의 극성스런 열성, 그 자체였다.
『차라리 다른 엄마들처럼 여기저기 놀러라도 다녔으면 해요. 친구한테서 전화만 와도「누구냐」 「무슨 일이냐」「웬 전화가 그렇게 기냐」고 닥달이거든요. 밤마다 간식 챙겨준다는 핑계로 몇차례씩 제방을 드나들면서 감시하고….』서양은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A부인으로서는 지극한 관심과 극진한 정성이었지만 그게 모두 딸에게는 지긋지긋하고 몸서리쳐지는 간섭이나 「감시」였다.
사춘기 소녀들에게서 C씨는 흔히 서양처럼 어머니를 적으로 보는 사례를 대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 어머니가 싫어하는 일을 몰래 하고싶은 충동이다. 이성친구를 은밀히 만나는 것이 대부분. 『머리핀만 새로 꽂아도 엄마는 멋부릴 궁라만 한다고 야단이죠. 남자친구 얘기를 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요.』 C씨와 단둘이 만난 서양은 비밀로 지켜왔다는 얘기도 다 털어 놓았다.
『얼마나 자주 만나느냐, 또는 만나서 무얼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녜요. 엄마가 알 수도, 어떻게 하라고도 할수 없는 곳에서 엄마가 알면 펄펄 뛰실일을 한다는 쾌감 때문이니까요.』
서양의 학습습관 검사결과는 하위 3∼5%수준. A부인은 딸을 서울시내고교로 끌어 들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지만 그런건 서양에게는 전혀 관심밖이다. 되레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모녀간의 걷잡을 수 없는「적대감」부터 해소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C씨는 딸과 어머니를 각각 동시에 상담치료키로 했다.
×××
『제 딸이예요. 고1인데 이제부터 몰아세우면 S대에 들어갈 수 있을지, 지능·적성·흥미검사를 모두 좀 해보시죠.』
A부인 일행에 뒤이어 들어선 B부인(42)은 여고1년생을 앞세우고 의자에 앉기가 바쁘게 다그쳤다. S대에 딸을 입학시키겠다는 결의가 역연했다.
『큰 애는 웬만큼 한다싶어 내버려 뒀다가 그만 「실패」하고 말았거든요.』 올해 명문사립Y대에 입학한 장남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애만은 스파르타식으로라도 공부를 시켜 기어이 S대에 넣고 말겠읍니다』생활에 구애를 받지 않을 정도는 된다는 중소기업사장부인 B씨.
옆에 앉아 기세등등한 어머니를 지켜보는 딸(16)의 표정은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에게 인생의 전부를 건듯한 어머니에게 싸늘한 냉소까지 보내고 있었다.
『우등생이라고는 하지만 1등은 별로 못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B부인은 빨리 검사를 해보자고 서둘렀다.
순간 딸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쩌라는 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를…」상담원 C씨는 당혹감을 느끼면서 『지금껏 해 오신대로가 잘 하신 것입니다』라고 겨우 말했다. B부인은 그러나 태도를 별로 누그러 뜨리려 하지 않았다.
상담원 C씨는 『입시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A부인이나 B부인과 같은 극성 엄마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며『특히 부모들의 욕심과 기대가 지나친 나머지 모녀·모자사이가 중오의 관계로 번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고교만 들어가면 활짝 피어나야할 사춘기 청소년을 마치 새싹을 뽑아 올리는 어리석음으로 망쳐놓는 사례가 많다』는 C씨는 『지금 부모, 특히 어머니들이 할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안고 기를 펴지 못하는 자녀의 편에서 모든 걸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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