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소설전문잡지 '악스터' 편집장 백다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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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 ‘악스트(Axt)’가 나타난 건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기존 문예지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세련된 디자인의 격월간 문예지. 비평과 광고 그리고 선생님, 즉 문단의 원로가 없는 이 잡지가 세상에 나온 건 지난해 7월이다.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천명관 작가는 인터뷰에서 한국 문단의 권력 문제를 뼈아프게 지적해 큰 반향을 이끌어냈고, 마침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불거지며 더욱 주목받았다. 그렇게 첫 호가 1만 부 팔렸다. 이후 출간된 2호, 3호도 연이어 7000부 이상 팔렸다. 이름이 알려진 문예지들도 2000부 이상 팔리지 않는 국내 문학 시장에서 이례적인 성과다. 그 중심에는 백다흠(37) 편집장이 있다. ‘소설가를 위한, 소설 독자를 위한, 소설을 위한’ 잡지를 만들겠다는 그를 만났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홍상수 영화에 나올 법한 곳’에서. 눈 내리는 날이었다.

`악스트`, 사진=라희찬(STUDIO706)

`악스트`, 사진=라희찬(STUDIO706)

-소설도 잘 팔리지 않는 요즘, 문예지가 이렇게 주목받기도 쉽지 않다.
“기존 문예지는 국문학적 이슈를 제기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악스트’는 비평을 배제했다. 디자인 면에서도 새로웠기에 환영받은 것 같다.”

-우선 어떻게 시작된 잡지인지 묻고 싶다.
“은행나무 출판사가 모기업인데, 주연선 대표님이 시·소설·평론 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 문예지를 만들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기존 문예지들이 잘 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또 종합 문예지를 만든다면, 우리의 목표는 ‘그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일 뿐이라고 말씀드렸다. 대신 좀 더 젊은 독자들과 소설가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소설 중심의 잡지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평소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던 소설가 백가흠(백 편집장의 친형이다), 정용준 그리고 해외 문학을 잘 아는 배수아 작가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제호는 배수아 작가의 아이디어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에서 ‘악스트(Axt·도끼)’를 따왔다. 우리의 캐치프레이즈라 봐도 좋다.”

-편집위원도 모두 소설가고, 잡지도 소설과 소설 리뷰가 중심이다. 정체성을 소설에 둔 이유가 뭔가.
“소설은 삶의 질을 나아지게도 못하고, 부를 축적해 주지도 못한다. 어떻게 보면 쓸모없는 일이지만, 이 쓸모없는 일이 갖는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궁금해하길 바랐다.”

-그런 고민이 표지 인물 선정과 인터뷰에 녹아들어 간 것 같다. 천명관(1호), 박민규(2호), 공지영(3호), 듀나(4호)는 모두 문학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라도 알 만한 이름이다.
“맞다. 문화 전반에 관심이 있으면서 문단 경계에 서 있는 독자들이 문학 안으로 좀 더 들어오게 하고 싶었다. 그런 독자들을 끌어들일 때 문학 인프라가 더 탄탄해질 수 있으니까. ‘이 작가 이름을 들어보긴 했는데 이 잡지는 뭐지?’ 하며 궁금해할 수 있도록.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 정말 재미있게 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싶다.”

-‘악스트’의 인터뷰는 매번 독특하고 또 흥미롭다. 천명관·박민규 작가의 인터뷰는 문단 권력과 표절 문제를 다뤄 더 주목 받았다. 얼마 전 나온 4호 커버 듀나 인터뷰도 그렇고. ‘악스트’의 인터뷰가 특히 염두에 두는 게 있다면.
“솔직히 말해 일반 독자들은 소설가를 잘 모른다. 정말 유명한 사람만 안다. 그래서 이 인터뷰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커버 인물을 ‘알리는 것’에 있다(웃음). 두 번째는 소설 외적인 것을 묻자는 것이다. 소설가가 소설가에게 직접 묻기에 더 자연스럽다. 평론가처럼 비평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악스트’의 커버 인터뷰는 세 편집위원이 진행한다). 사실 자세히 보면 소설 얘기는 별로 없다(웃음). 한국 정치와 여성 문제, 소설 외의 관심사 등에 대해 묻는다.”

-리뷰도 많이 실리는데, 신간과 구간을 가리지 않고 국경도 넘나든다.
“국내 문학의 경우 1년 안에 나온 책, 90년대에 좋았던 책, 70년대에 좋았던 책이 기준이다. 나는 한국 문학의 태동이 70년대에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70년대 소설부터 다룬다. 또 한국 문학이 가장 크게 변한 게 90년대라 그때 작품을 싣는다. 해외 문학은 정말 경계가 없다. 주옥같은 작품이 너무 많다.”

-서평은 그 자체로 에세이로 읽힌다. 그게 더 매력적이고.
“에세이적인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서평은 비평문이 아니다. 문학은 정복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에세이를 좀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에세이는 그렇게 볼 장르가 아니다. 좀 더 첨예한 사유를 담은 에세이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쉽지 않다.”

-단편과 연재 소설도 실리고 있는데, 작가들에게 ‘악스트’만의 색깔을 담아달라고 청탁하나. “그럴 수가 없다. 소설가 각자에겐 작품을 써 가는 자기만의 리듬이 있다. 창작자들 각자 가는 길이 있는데, 그걸 매체의 성격에 맞춰달라 할 순 없다.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라면 모두 우리의 청탁 대상이고.”

백다흠 편집장, 사진=라희찬(STUDIO706)

백다흠 편집장, 사진=라희찬(STUDIO706)

-잡지 디자인도 관심을 끄는 데 한몫한다.
“전적으로 나와 동갑내기 디자이너(이승욱), 이렇게 두 사람의 몫이다. 둘이서 그냥 놀았달까(웃음). 개인적으로 미니멀한 것, 여백이 많은 걸 좋아한다. 여백을 많이 두면 텍스트에 집중도 잘 된다. 문예지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물 컷을 많이 넣은 것도 우리 스타일이다.”

-광고가 없다는 게 눈에 띈다. 이 점이 ‘악스트’를 신선하게 하지만, 광고 없이 잡지를 만드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광고가 전체적인 디자인과 정체성을 침해하는 요소가 될 것 같아서 광고 없이 가자고 주장했다. 과감한 결정이었는데, 대표님을 설득하는 일이 꽤 어려웠다. 지금도 계속 논의 중이다. 요즘엔 잡지를 지속시키는 하나의 방편이 광고라고 한다면, 그걸 좀 다른 식으로 실어 보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다.”

-광고 없이 가는 게 무조건적인 목표는 아니었나 보다.
“맞다. 계속 개선해가는 게 목표다. 잡지 정체성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제호 타이포그래피만 제외한 모든 걸 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판형, 디자인, 종이 질 등등. 그게 잡지의 생명력을 늘려줄 거라 믿는다.”

-가격이 2900원이다. 그대로 가는 건가.
“당분간 그렇게 간다. 접근하기 편하게 하자는 게 대표님의 생각이었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현재 목표는 매 호 1만 부씩 판매하는 거다.”

-소설이 팔리지 않는 시대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이야기에 대한 갈망은 큰 시대이기도 하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영상으로 꾸려진 이야기를 보면서 인쇄 매체로 이야기를 꾸려가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이라면.
“사실 영화 시장이 참 부럽다. 철저하게 시장에 맡기지 않았나. 그게 부럽다. 시장에 내던져졌다고 해서 콘텐트의 질이 낮아진 것도 아니다. 앞으로 소설이 가야할 길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은, 시장에 완전히 내던져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천명관 작가는 창간호 인터뷰에서 등단 제도 등을 비판하며 문학을 완전히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문학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이 있으니까. 문학은 재미있게도 개인적인, 은밀한 성질을 가진다. 300명씩 의자에 앉아 관람하는 게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1대 1로 만난다. 내면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그걸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시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학과 사진을 공부한 아티스트다. 웬만한 국내 소설가들의 프로필 사진 옆에는 백다흠이란 이름이 써 있더라. 책을 만드는 일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
“출판은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문학적 기질도, 예술적 감각도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소통하는 데도 익숙해야 한다. 책 만드는 일은 매번 어렵지만 무척 재미있다.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제조업의 재미가 있다.”

beyond M magazine M의 문화 가로지르기 프로젝트. 웹툰·TV·문학·음악·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고 새 흐름을 탐구합니다. 문화로 통하고 연결되고 풍성해지는 M 너머의 이야기.

*이 기사는 매거진M148호(2016.01.22-2016.01.28)에 실린 기사입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장소=카페 서교동 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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