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야, 총리추천·탄핵 지체 없이 추진하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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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범죄를 주도한 혐의로 피의자 신세가 된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모든 권위를 상실했다. 그의 탄핵에 필요한 도덕적·정치적·법적 요건도 전부 갖춰졌다. 이제 여야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끌어낼 법적·제도적 조치에 즉시 착수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난 4주 동안 광장에서 대통령 퇴진을 외친 국민의 분노를 해소하는 길이다.

 때마침 야 3당이 21일 박 대통령 탄핵 추진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새누리당도 비박계인 남경필 경기지사, 김용태 의원이 22일 탈당키로 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마저 거부하며 권력을 지킬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상황이다. 막연히 ‘하야’만 외칠 게 아니라 헌법이 정한 절차를 통해 대통령의 퇴진을 실질적으로 끌어내는 것이 정치권의 할 일이다.

 따라서 야 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는 박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되 이로 인한 국정공백을 메울 책임총리를 추천해 거국내각을 출범시키는 게 우선이다. 박 대통령도 직접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가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면 임명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혹시 임명을 거부하더라도 정치권은 일단 총리를 뽑고 “약속을 지키라”며 압박하는 것이 정도다.

 이와 함께 여야는 정략 아닌 헌정 수호의 정신 아래 탄핵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탄핵은 박 대통령이 시간을 벌고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자청한 꼼수란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명백히 드러난 이상 국회의 탄핵은 당연한 의무다. 탄핵이 발의되면 그 자체로 대통령과 친박 세력에 심각한 압박이 된다. 탄핵은 박 대통령의 버티기로 인한 국정혼란을 합법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기도 하다.

 ‘최순실 정국’이 한 달을 넘겼음에도 이런 절차가 지연된 건 야권,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구도를 염두에 두고 어정쩡한 행보를 계속해온 데 상당한 원인이 있다. 여야는 당리당략을 버리고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하겠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