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혈액|전신을 여행하는 생명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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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경에는 피에 관한 기록이 5백군데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로 목욕을 하고 로마의 검투사들은 격투에 져서 죽은 상대방의 피를 마셨다고 한다. 피속에 용기와 힘이 들어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피 속에 흔히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피는 생명의 본체인 것이다. 혈액이 흐르지 않는 조직은 살아있는 조직이 아닌 것이다.
인체의 혈액양은 체중의 13분의1.체중이 65㎏이라면 5ℓ가되는 셈이다. 혈기가 왕성하다고 피가 더 많은 것도 아니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피가 적은 것은 아니다.
혈액의 비중은 물보다 약간 커 남자가 1·057, 여자가 1·053이며 진득진득한 정도(점성도)는 물의 4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피는 태생기에는 간에서 만들어지나 출생 후에는 주로 뼛속의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피 한 방울을 유리판 위에 떨어뜨리고 현미경으로 보면 혈장이라는 담황색의 액체 중에 혈구가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혈액을 뽑아 시험관에 넣어두면 크게 두 층으로 나뉜다. 위쪽 투명한 부분이 혈장으로 전체의 55%를 차지하고 아래쪽 45%가 혈구다.
혈장은 그 90%가 물로 돼있으며 나머지는 알부민, 면역에 관계하는 글로불린, 혈액을 응고시키는 피브리노겐 등의 단백질과 효소·비타민·호르몬·나트륨 등의 무기염류, 지방질, 탄수화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혈액을 용기에 담아보면 아래쪽으로 가는 혈구 중 제일 밑에 산소를 운반하는 붉은색의 적혈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위에 있는 것이 병균이나 이 물질을 잡아먹는 백혈구와 혈액을 굳게는 혈소판이다.
적혈구는 지름이 약8미크론, 두께가 2미크론 정도로 가운데가 움푹 팬 도너츠형으로 생겼다. 1㎜길이 안에 자그마치 1천3백 개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적혈구다.
적혈구는 혈액 1입방㎜에 4백만∼5백만 개나 되므로 체내에는 약20조∼25조개가 있다는 계산이다.
적혈구의 수명은 석달. 그러니까 하루에 약 1%가 죽어가고 그만한 양이 골수에서 생겨 보충된다. 하나의 적혈구는 죽을 때까지 체내를 무려 7만5천 바퀴나 여행하는 셈인데 수명을 다한 적혈구는 대부분이 간에서 나온 담즙이라는 소화액에 섞여 장으로 배설된다.
적혈구 안에는 혈색소 (헤모글로빈)가 들어있는데 이 속에 산화걸이 들어있기 때문에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산소가 줄어들고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검붉게 보이게 되는데 이것이 정맥혈이다. 백혈구는 혈액 1입방㎜에 6천∼8천 개로 전체적으로는 3억5천만개가 되며 크기는 종류에 따라 8∼15미크론.
백혈구는 세균이 침입하면 경비요원을 비상 소집해 백병전을 벌인다. 아뫼바처럼 움직여 병균을 세포 속으로 잡아먹는데 고름이란 이들 세균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백혈구의 시체와 조직의 분비물이 섞인 것.
혈소판은 혈액 1입방㎜에 20만∼40만개가 들어있으며 혈액응고에 필요한 역할을 한다.
혈관에 구멍이나 출혈이 있게되면 우선 혈관이 수축하고 혈소판이 구멍난 혈관 벽에 달라붙은 다음 혈액응고인자를 동원해 섬유소라는 그물을 만들어 땜질을 하게 된다.
서울대의대 김병국 교수(혈액종양내과)는 혈액의 기능을 크게 운반·방어·조절기능으로 나눈다.
운반기능은 체내에서 생긴 탄산가스를 폐에 싣고가 그곳에서 산소와 바꿔 전신에 운반하며 이밖에 각종 영양소와 체내노폐물을 운반하는 것으로 혈관을 철도의 레일에 비유한다면 혈액은 그 위를 달리는 화차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방어기능은 출혈과 세균침입에 대항하는 것이며 조절기능은 체온·수분 및 전해질을 체내 상태에 따라 정상으로 조절하는 것으로 이외에 혈액은 각 장기간의 연락병구실도 한다는 설명이다.
골수에서 만들어진 피가 헌혈이나 출혈로 줄어들면 평소의 6∼8배의 빠른 속도로 보충된다.
예를 들어 1회 헌혈량인 3백20㏄의 피가 빠져나가면 3∼4일 정도면 원상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인공혈액이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상품화돼 일부 사용되고 있으나 아직은 산소를 조직에까지 운반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수혈을 해야하는 응급환자에게 일시적으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혈액은 또 질병진단의 주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서울대의대 조한익 교수(임상병리과)는 혈액에는 1천여 가지의 단백질을 비롯, 수 천 가지의 성분이 들어 있고 이들 각 성분은 질병의 상태에 따라서 양이나 성상이 변하기 때문에 이것을 체크해서 질병의 종류나 진행 정도, 예후판단에 이용된다고 말한다.
현재 이용되고 있는 것은 2백여 가지에 불과하나 매년 새로운 검사법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예로서 백혈병은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증가하는 법이기 때문에 혈액과 골수를 조사해서 진단할 수 있으며 치료 후에는 이들 백혈병 세포의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치료효과를 확인할 수가 있고 또 혈액중의 항체나 바이러스존재를 조사해 AIDS감염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Rh음성 혈액을 급히 구하는 긴급 뉴스를 듣게된다. 이것은 Rh혈청에 대해 응집하지 않는 적혈구를 가진 혈액형으로 음성인 사람에게 Rh양성의 적혈구를 수혈하면 그 사람의 혈청 속에 항체가 생기고 재차 양성혈액을 수혈하면 Rh인자와 항체가 응집을 일으켜 중대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아버지가 양성이고 어머니가 음성인 경우 사산이나 유산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인데 Rh음성이 우리 나라에서는 2백명에 1명(백인은 1백명에 15명)정도로 알려져 있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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