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박 대통령 사실상 피의자 신분 조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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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피의자로 조사할 계획을 세웠다.

퇴임 후 재판 갈 가능성 염두
대통령 진술거부권도 고지
기소되면 법원 증거로 인정

사정 당국 관계자는 14일 “박 대통령을 조사하면서 ‘피의자 신문조서(피신)’라고 명시된 조서를 받진 않지만 그 대신 ‘진술조서’를 받고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점을 고지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진술거부권의 고지는 형사소송법(244조)상 피의자를 조사할 때 수사기관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박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더라도 조사 과정, 혹은 이후에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진술거부권을 고지한다”며 “그래야 혹시 나중에 기소될 경우 법정에서도 증거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설명했다.

‘최순실(60·구속)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이런 방침을 정하고 박 대통령을 상대로 물어볼 질문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앞서 검찰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일단 참고인이며 조사 과정에서 신분이 (피의자로)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피의자 신문조서에 가까운 진술조서를 받더라도 불소추 특권(헌법 84조)에 따라 박 대통령을 기소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정치권에서 진술 내용을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명분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18일께 법원에 제출할 최순실씨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진술 내용 일부를 포함시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최씨와 박 대통령 간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을 놓고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가 공소장의 기초사실에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 과정에서 대기업 출연금의 전체 규모와 기업별 할당액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가 있었는지, 실제 모금된 출연금 774억원의 성격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박 대통령을 상대로 조사한 뒤 그 결과를 적시할 것으로 보인다.

최씨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공범인 안종범(57·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역할과 지시를 했는지도 최씨 공소장에 포함될 전망이다. 최씨와 박 대통령이 두 재단 설립의 공모 관계였는지, 아니면 최씨가 박 대통령의 선의의 지시를 왜곡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려 한 것인지가 밝혀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최씨와 안 전 수석은 검찰에서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해 왔다. 현재 검찰은 박 대통령과 최씨 사이에서만 재단에 대한 사전 의견 교환이 있었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 박 대통령의 지시로 안 전 수석이 참여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최씨와 두 재단 설립에 대해 논의한 뒤 안 전 수석에게 지원을 지시했다”고 답하면 그 진술은 최씨의 직권남용 혐의 대목에 녹여 쓸 수 있다. 검찰이 안 전 수석을 이른바 승계적 공범으로 본 것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런 차원이 아니라 순수하게 재단이 잘 운영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언급한 수준”이라고 말하면 최씨와 안 전 수석의 공모 혐의 대목에서 박 대통령은 제외될 수 있다.

◆대통령 진술조서 향후 어떻게 되나

이 진술조서는 박 대통령의 혐의 입증 정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박 대통령이 두 재단 설립에 개입하거나 국가 기밀을 유출한 혐의가 드러나면 검찰은 박 대통령을 입건할 수 있다. 다만 불소추 특권 때문에 기소중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검찰은 이후 진술조서를 내사 자료로 보관하다가 박 대통령이 퇴임하면 이를 근거로 재판에 넘기는 절차를 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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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범죄 혐의를 찾지 못하면 진술조서를 보관한 상태에서 다시 기회를 봐야 한다. 최씨나 안 전 수석을 수사하는 과정이나 재판에서 결정적 단서가 확보되면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재조사할 수도 있다. 이때도 임기가 끝나야 기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결정적 단서가 없다면 내사 종결 처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진술조서는 최씨와 안 전 수석 재판의 자료로만 사용된다.

김선미·김나한·송승환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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