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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방문 흔적지우기' 지방 민심현장에서 이미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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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 입구. 이곳은 박 대통령이 지난 7월 28일 여름 휴가 차 들른 곳이다. 동구는 이를 기념해 지난 8월 ‘대한민국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대왕암공원 방문’이라는 제목의 안내판 2개를 공원 입구와 해맞이 광장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날 찾아간 공원엔 이 안내판이 사라졌다. 울산 동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대통령 사진이 훼손됐다는 얘기를 듣고 안내판을 철거했다”며 “방문객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닌 만큼 다시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철거 전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 방문기념 입간판. 얼굴 부분을 사인펜으로 지우는 등 심하게 훼손돼 있다. [사진 울산제일일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국 유명 관광지와 상가에서 ‘박근혜 흔적 지우기’가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다녀간 뒤 재미를 봤던 식당 주인들은 “대통령 마케팅이 끝났다”며 기념사진을 떼며 등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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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 태화강 십리대숲 입구에 설치된 박근혜 대통령 방문기념 입간판은 그대로 있지만 역시 누군가 뾰족한 것으로 얼굴 부분을 긁어놓았다.

박 대통령이 휴가 때 들른 울산 중구 태화강 십리대 숲도 유탄을 맞았다. 이곳 안내판의 박 대통령 사진 역시 얼굴 부분을 뾰족한 것으로 마구 긁은 듯한 자국이 있었다. 십리대숲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정재근(27)씨는 “최순실 사태가 난 뒤로 ‘이곳이 대통령이 왔다 간 곳이 맞느냐’고 묻는 관광객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 신정시장의 한 떡집은 올 여름에 붙여 놓은 박근혜 대통령 방문기념 사진을 보고 손님들이 욕을 하자 12일 저녁 사진을 제거했다.

울산 남구 신정시장의 한 떡집은 올 여름에 붙여 놓은 박근혜 대통령 방문기념 사진을 보고 손님들이 욕을 하자 12일 저녁 사진을 제거했다.

대통령의 또 다른 여름휴가 코스였던 울산 남구 신정시장의 상인들도 대통령 흔적을 지우느라 바빴다. 가게 문 양 옆에 대통령 방문기념 사진을 붙였던 한 떡집은 손님들이 욕하는 얘기에 지난 12일 밤 제거작업을 했다. 대통령이 들러 과일을 사간 한 과일가게 역시 11월 초에 진열대 유리에 붙여놓은 대통령 사진을 뗐다. 이 가게 사장 박모(54)씨는 “손님들이 대통령과 관련해 욕설을 하거나 ‘박근혜 사진 붙여놓으면 과일을 안사겠다’고 욕을 하는데 당연히 떼지 않겠느냐”며 “대통령 왔다 간 뒤에 딱히 덕을 본 것도 없는데 생계수단이 흔들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 삼산동의 한 조개구이집은 지난 11월 3일 대통령 하야 같은 특단의 조치가 날 때까지 술을 원가에 팔겠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울산 남구의 한 조개구이집은 대통령 하야 등 특단의 조치가 있을 때까지 술을 원가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3일 내걸었다. [사진 독자 김영섭씨]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간 충북 청주시 서문시장 내 삼겹살거리 상인들도 점포 내 벽에 걸어놨던 박 대통령 사진을 대부분 뗐다. 청주 삼겹살거리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2012년 3월 청주시가 조성한 전국 유일의 삼겹살 특화거리다. 15곳의 삼겹살 가게가 성업 중이다. 박 대통령이 2014년 7월 1일 통합 청주시 출범식에 참석한 뒤 이곳에 들러 유명해졌다. 현재 박 대통령 사진을 걸어뒀던 식당 9곳 중 8곳은 기념 사진을 떼냈다. 식당 주인 이모(62)씨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젊은 사람들이 와서 박 대통령 사진을 치워달라는 말을 자주해 11월초 박 대통령 사진을 떼고 다른 액자 3개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한 상인은 “박 대통령이 다녀간 직후 매출이 2배 이상 뛰어올라 재미를 봤지만 지금은 오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박 대통령 사진을 보고 그냥 나가는 손님도 있어 사진을 제거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당시 박 대통령이 방문한 청주 육거리시장 전통 죽집도 사진을 떼냈다. 이 죽집에는 박 대통령이 죽을 떠먹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은 후 그 영상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플래카드를 만들어 외벽에 걸어뒀었다.

충남 서산시 철새도래지 교육·체험 전시관인 ‘버드랜드’에서도 박 대통령 사진을 떼냈다. 버드랜드측은 본관과 전시실 등에 전시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 3점을 최근 떼냈다. 사진은 지난 8월 4일 박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전시관을 둘러보던 모습이다. 전시관 측은 “최근 ‘박 대통령 사진을 왜 전시했느냐. 보기 싫으니 없애라’는 민원이 빗발쳐 할 수 없이 제거했다”고 말했다. 서산버드랜드는 천수만의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철새 테마파크로 2013년 문을 열었다. 전체 면적은 24만4800㎡다.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노인여가문화복지시설인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의 물리치료실에 걸려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도 사흘 전 철거됐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0월 23일 이곳을 찾아 노인들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빛고을노인건강타운 측은 박 대통령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이 2주 연속 0%를 기록하는 등 반발 여론이 심해지자 민원을 우려해 사진을 떼어냈다.

중소 기업들도 박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2013년 정부에서 창조경제 대상을 받은 대전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홈페이지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없앴다. 이 사진은 박 대통령에게 상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 회사 대표는 A씨는 “‘홈페이지에 박 대통령 사진을 걸어놔서 득을 볼 게 없으니 떼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많아 홈페이지에서 지웠다”고 말했다.

한편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이 지난 8~10일 전국 성인 1003명에게 설문한 결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5%로 역대 대통령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지역별로 대구·경북 9%, 부산·울산·경남 5%, 대전·세종·충청권 7%였다. 호남은 0%였다.

서원대 엄태석 교수(행정학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실물 경제와 밀접한 중소상인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바닥 민심을 파고 들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서산·청주·광주광역시=최은경·김방현·최종권·김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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