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클린턴 - 변칙왕 트럼프 ‘썰전’…역대 최대 1억명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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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헴프스테드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첫 TV 토론이 벌어진다. 하루 전인 25일 이 대학에서 TV 토론 리허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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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26일(현지시간) 첫 TV 토론으로 대선의 분수령을 맞는다.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두 사람이 직접 유권자 앞에서 벌이는 첫 진검 승부다.

어떤 종류 트럼프 등장할지 관심
클린턴, 갖가지 대역 세워 대비

역대 대선 후보 TV 토론은 대부분 승패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징후가 등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NBC뉴스가 25일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4%가 “TV 토론이 후보 선택에 극히 또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 세 명 중 한 명 꼴로 TV 토론을 투표의 핵심 변수로 지적했다. 또 이번 토론은 역대 최고 기록인 1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대흥행을 예고해 TV 토론의 무게감이 더욱 커졌다. 클린턴과 트럼프가 오차 범위내 박빙 승부를 벌이면서 TV 토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은 물론이다. 워싱턴포스트(WP)·ABC뉴스가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49%)과 트럼프(47%)의 양자대결 격차는 2%포인트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토론 대결은 모범생과 예측불허의 상극 양상이다. WP는 “클린턴은 다방면에 깊이를 갖추고 열심히 공부해 잘 준비했다”고 캠프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트럼프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미사일”이라고 묘사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토론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사납고 공격적인 원래의 트럼프가 등장할지, 아니면 최근 들어 유세 현장에서 보여주는 상대적으로 정제된 트럼프가 나올지다. 일간 샌프란스시스코 크로니클은 “어떤 종류의 트럼프가 등장할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클린턴 캠프도 ‘다양한 트럼프’를 상정해 준비했다. 제니퍼 팔미에리 대변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트럼프들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캠프는 트럼프 대역으로 여러 명을 세워 각각 다른 모습의 트럼프별로 리허설을 가졌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TV 토론에서 구사할 무기도 서로 상이하다. 퍼스트레이디·상원의원·국무장관의 3관왕 경력을 갖춘 클린턴은 풍부한 국정 경험을 내세우는 정치적 경륜이 강조점이다. 이를 통해 안정감을 더욱 부각한다는 전략이다. 90분간의 토론 시간 중 미국의 미래·번영·안보 주제를 놓고 상세한 지식과 과거 경험을 드러내 ‘역시 클린턴’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클린턴의 목표다. 반면 트럼프는 국정·정치 경험의 부족은 오히려 워싱턴 정치와의 차별화에 유리하고 또 순발력과 흥행성으로 클린턴을 순식간에 압도할 수 있다고 본다. WP는 “트럼프는 리얼리티 TV 쇼의 달인”이라고 지적했다. 각본 없는 TV쇼에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아 자신을 부각시키는 본능적 재주가 트럼프의 힘이다. 지난해 8월 첫 공화당 경선후보 TV 토론회 때 트럼프가 토론 시작부터 ‘경선 불복’ 가능성을 공언하며 파장을 일으킨 뒤 토론회 내내 자신만 부각되는 원맨 쇼를 했던 게 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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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선 두 후보간의 불꽃튀는 네거티브 공방전도 예고됐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는 클린턴의 토론 스타일을 분석한 ‘심리 분석 자료’를 축적했다. 예컨대 클린턴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를 땐 특정한 표현을 쓰는데 트럼프가 이 순간을 파악해내 곧바로 맞대응한다는 취지다. 트럼프의 공격 지점은 ‘사기꾼 클린턴’이다. 트럼프가 그간 유세에서 계속 제기해 왔던 건강이상설, e메일 스캔들, 클린턴재단 후원금 논란 등이 그 소재다. 이를 통해 ‘못 믿을 후보’ 클린턴으로 깍아내리려 한다. 클린턴 캠프 역시 트럼프를 공격할 실탄이 충분하다. 클린턴이 유세장마다 “백악관에 트럼프가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반복했던게 공세 지점을 미리 알려준다. 트럼프의 막말과 국정 무경험, 발끈하는 기질을 파고들어 ‘못 맡길 후보’ 트럼프로 낙인찍겠다는 목표다.

TV 토론에 대한 여론의 일반적인 예상은 클린턴이 더 낫지 않겠느냐 이다. CNN·ORC의 이달초 조사에서 ‘클린턴이 더 잘 할 것’이 53%로 트럼프(43%)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클린턴 캠프는 경계감이 가득하다. 클린턴의 경력이 더 많다고 트럼프보다 더 높은 잣대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선거 참모인 롤리 무크는 “트럼프가 토론 도중 흥분하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된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얘기가 보수 진영에서도 나왔다. 보수잡지인 내셔널 리뷰의 편집장인 리치 로우리는 폴리티코 기고에서 “클린턴 본인이 트럼프를 대통령 무자격자로 비난해 왔는데 이게 트럼프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며 클린턴에 비용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대중의 기대 수준이 높은 클린턴은 잘해도 본전이고 반대로 낮은 트럼프는 잘하면 반전이 될 수도 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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