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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서울’이 무슨 잘못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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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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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문화부 기자

‘하이서울 페스티벌’이 사라진다. 서울문화재단(대표 주철환)은 2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28일부터 5일간 열리는 ‘하이서울 페스티벌’이 올해부터는 ‘서울거리예술축제’로 명칭을 변경해 새롭게 출발한다”고 밝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열기를 축제로 승화시키자는 차원에서 이듬해 5월 시작한 게 ‘하이서울 페스티벌’이다. 2008년 대한민국 공공행정 ‘문화축제 부문’ 대상을 받는 등 ‘하이서울 페스티벌’은 올해로 14회째를 맞이하며 서울을 대표하는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은 “뮌헨 옥토버페스트, 삿포로 눈 축제처럼 도시 축제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며 “하이서울 페스티벌은 명칭이 갖고 있는 밝고 유쾌한 이미지로 인해 일정 부분 브랜드에 성공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굳이 간판을 바꿔 다는 이유는 뭘까. 축제 김종석 예술감독은 “3년 전부터 거리예술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주로 선보여 왔는데 그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명칭을) 바꾸게 된 것”이라며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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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서울시가 지난해 ‘하이서울(HI! SEOUL)’을 용도 폐기하고 ‘아이 서울 유(I SEOUL U)’를 새로운 도시 브랜드로 발표했을 때부터 예고된 수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서구원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전임 이명박-오세훈 시장의 흔적을 철저히 지우겠다는 뜻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공공 브랜드가 논란이 된 건 최근에도 있었다.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국가 브랜드로 발표했을 때도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표절 시비뿐 아니라 “멀쩡한 ‘다이내믹 코리아’를 놔두고 웬 뜬금없는 ‘크리에이티브’?”라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거 아닌가. 다음 정부에서 계속 쓸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는 ‘하이서울’이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감각이 세련된 이라면 무색무취한 네이밍이 촌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며 서울시민 누구나 알 만한 것이 됐다면, 그 친숙함과 인지도만으로도 나름 의미 있는 게 아닐까. 브랜드 하나를 알리고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던가. 권력이 달라질 때마다, 대통령·시장이 바뀔 때마다 공공 브랜드와 같은 비정치적 요소마저 몽땅 갈아엎는다면 과연 대한민국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서구원 교수는 “세계적 브랜드라면 대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다. 상징성·참신성보다 더 중요한 브랜드의 본질은 바로 지속성”이라고 전했다.

최 민 우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