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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짜리 기관장 양산 막을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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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강병철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국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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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경제부 기자

“1년 반 짜리 이사장인데요. 2018년 2월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그만 두겠죠.”

“부산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왔다갔다 하면 제대로 일할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올 추석 직전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한국거래소 차기 이사장에 응모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나온 여의도 증권가 안팎의 반응이다. 정 부위원장은 지난 22일 거래소 이사장 단독 추천받아 30일 주주총회 선임 절차를 남기고 있다. 거래소 이사장은 부산 시민사회와의 약속 때문에 매주 절반은 본사가 있는 부산에서 일해야 한다. 세종시 공무원처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누구보다 많다.

원래 임기 만료를 앞둔 최경수 현 이사장은 1년여 정도 연임할 거란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공직과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경험을 앞세워 지난 3년간 거래소를 잘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실상 1년 반 짜리 이사장을 새로 맡을 인물이 있겠느냐는 의문도 있었다.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현 정권의 실세로 떠올라 ‘청와대 핫라인’으로 불리던 정 전 부위원장이 지원한 것은 뜻밖이었다.

정부 지분이 없는 거래소가 과연 공공기관인지에 대한 논란은 끝도 없고 답도 없다. 여기서 이 논란을 얘기하기보다 먼저 1년 반 짜리 기관장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잘 살펴봐야 한다. 1987년 개정된 제6공화국 헌법에 따라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이 됐다. 이 때문에 3년 임기의 공공기관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깃장처럼 놓인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은 새 정권이 출범하면 눈치를 보다 3~6개월 뒤 그만 둔다. 그런 다음 새로운 3년 임기의 기관장이 온다. 문제는 그 뒤 오는 기관장이다. 업무 파악을 위해 3~6개월이 지나면 대통령 레임덕과 대선이 맞물려 온다. 마지막 1년은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제를 개헌하던가, 아니면 기관장의 임기를 3년에서 2년 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개헌하기 힘든 경성(硬性) 헌법이라 후자가 현실적이다. 전반 2년 반 임기 동안 잘한 기관장은 남은 2년 반을 더 하면 되고, 잘못한 경우 새로운 2년 반의 기관장을 뽑으면 된다. 대통령 임기가 4년 혹은 6년으로 만약 바뀔 경우를 대비해 공공기관 관련 법률이나 시행령에서 ‘기관장의 임기는 대통령 임기의 절반으로 한다’고 고치면 된다. 1년 반 짜리 기관장 양산을 막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필요할 때다.

강병철 경제부 기자 bong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