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도 포섭 1순위는 SKY 출신…간첩 만난 미래 장관·의원들 [스파이전쟁 1부-남파간첩 ⑧]

  • 카드 발행 일시2024.06.19

〈제1부〉 ‘공화국 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인생유전

8화. 386 운동권 포섭 시도  

1995년 11월,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가 대한민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남파간첩 김동식이 촉발했다. 김동식이 포섭을 시도했던 운동권 출신 ‘거물’들이 불고지죄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나는 북에서 온 노동당 연락대표”라며 간첩 신분을 밝혔는데도 그와의 접촉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不告知)로 줄줄이 검거되고 사법처리 위기에 몰렸다.

이 사건이 터지기 두 달여 전 김동식은 남한에 두 번째로 침투했다. 당시 그는 80년대 대학생 시위와 집회를 주름잡던 30대의 386 운동권을 직접 만나 “통일운동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그들 중에는 훗날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쟁쟁한 인물들이 포함됐다(괄호 안은 1980~90년대 주요 운동권 경력, 이하 존칭 생략).

·이인영(고려대 총학생회장·전대협 1기 의장)
·허인회(고려대 총학생회장)
·우상호(연세대 총학생회장)
·함운경(서울대 삼민투 위원장·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주도)
·황광우(서울대 경제학과·민중당 지구당위원장)
·정동년(전남대 복학생협의회 의장·광주전남연합 의장)

운동권 인사들은 불고지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일부는 “정보기관의 프락치 또는 정신이상자로 생각해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어떤 이는 만남을 부인했다. 간첩 신고를 한 경우도 있었다. 유·무죄의 희비가 엇갈렸다.

서울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자신의 남파공작 이야기를 회고하는 김동식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자신의 남파공작 이야기를 회고하는 김동식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북한 노동당 대남공작본부(사회문화부)는 왜 고대·연대 총학생회장 출신을 찍어 포섭을 시도했을까. 김동식이 ‘남북 간첩전쟁 탐구’ 취재팀에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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