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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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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인간의 욕구와 동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가 항상성(Homeostasis)의 원리다. 항상 유지하고 싶은 평안한 상태가 존재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는 다시 그 평안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식욕·성욕·수면욕과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동기들이 이러한 항상성의 원리를 따르기에 부족해지면 질수록 더 강한 동기가 유발되지만 어느 정도 채워지면 동기가 약해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욕구가 이런 항상성의 원리만 따른다면 세상은 더 평화로울지도 모른다. 필요한 만큼만 먹고, 먹을 만큼만 키우며 사냥하고, 춥지 않을 정도만 입고, 이미 정해진 만큼만 충족돼 더 이상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상적인 군자의 삶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와 동기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좋게 얘기하면 성취욕구라고 볼 수 있지만 인간에게는 좀처럼 만족되지 않는 탐욕이 있다. 새로운 것이나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구가 존재한다. 이미 평안한 상태에 도달해 있어도 금세 그 평안함을 지루해하는 게 인간이다. 이런 끊임없는 욕구는 인간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단지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인지능력이 뛰어나 지구를 지배하며 문명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탐욕이 있었기에 지금의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 중의 하나가 탐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보고 있는 탐욕은 너무 서글프다. 법정관리로 물류대란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한진해운의 전 최고경영자는 집에만 있어서 경영능력이 없었다고 자인하면서도 당시 세계 7위의 해운회사를 덥석 맡았다. 회사가 어려울 때도 수백억원의 배당금은 물론 퇴직금까지 챙겨가고, 스스로 400억원 정도의 재산이 있다고 하면서도 고작(?) 10억원을 아끼려 불법 주식 매각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연간 140억원의 임대료 중 한진해운이 쓰는 6개 층의 임대료인 연간 36억원 가운데 일부를 받지 못해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100억원은 잘 받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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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눈에는 민정수석 가족의 재산도 이에 못지않아 보인다. 민정수석이 거래현장에 참석해 구설에 휘말린 처가의 부동산 거래는 1300억원짜리였고, 처가 소유의 골프장도 1000억원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가족회사를 통해 거의 절세(?)의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각종 세금을 피하는 천재적인 자산관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일반 국민은 평생 한번 타보지도 못할 최고급 외제차를 서너 대씩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세금과 각종 비용을 줄이는 편법을 저질러 오고 있었다. 누구든 세금을 적게 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절세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해도 납득이 안 된다. 2년여 전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됐을 때, 최소한 공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 고급차들을 처분하거나 정상적으로 사용할 생각을 왜 안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수백억원의 재산을 가졌는데, 몇 년 동안만이라도 고작(?) 몇 천만원에서 몇 억원의 세금이나 비용을 정당하게 내는 것이 그토록 아까웠을까?

 그리 풍족하지 않은 시절, 고위 공직자가 되기 전까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재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더구나 능력이나 운까지 있어 재산이 늘어났다면 그걸 탓할 수는 없고 탓해서도 안 된다. 최근 임명장을 받은 한 장관의 청문회에서 불거진 다른 의혹은 차치하고, 15년 전에 산 아파트 값이 올라 27억원의 시세차익이 났다는 사실 자체는 굳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모두가 투자를 꺼리고 있었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아파트를 사는 것은 위험을 감수한 투자였고 운이 좋게도 그 보상을 세게 받은 것이다. 지금 160만원인 삼성전자의 주가가 IMF 당시 4만원도 안 됐는데, 사실 그 장관이 1998년에 아파트 살 돈 3억여원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면 차익이 120억원이 될 수도 있었다. 단지 크게 벌었다고 합법적인 투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거나 공직에 임명된 후 그것도 고위 공직자가 되어 더 이상 재산 증식에 열을 올려야 할 가난한 처지가 아닌데도, 탐욕에 눈이 멀어 특히 뛰어난 능력과 한발 빠른 정보력으로 불법과 탈세의 경계를 넘나드는 편법을 저지르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이들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잘 먹고 잘살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보는 국민을 더 슬프고 좌절하게 만든다. 가진 자들이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이제 그만하자. 이미 많이 먹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