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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저출산 사회, 눈치 주는 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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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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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손만 잡았는데 애가 생겼다고들 하던가.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아이가 쉽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난임시술이 필요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체외수정을 하는 경우 난자채취를 위해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라는 것이 올 수 있는데 어지럼증이나 구토 등 가벼운 증상부터 신부전·쇼크·호흡곤란, 심지어는 사망 같은 심각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직장 여성의 경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컨디션이 되거나 아예 출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병원에도 정기적으로 가야 한다. 최근 발표된 ‘저출산 보완 대책’에 따르면 난임시술 비용을 전 계층에 확대 지원한다니 돈 걱정이야 덜겠지만 회사에서 좋아할 리가 없지 않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눈치 살피고 구박까지 받는데
워킹맘이 선뜻 아이 낳겠는가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이고
기본계획이니 보완책 마련한들
출산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한
직장 여성이 출산하긴 어려워

간신히 임신이 되었다 치고, 임신이란 다른 건 똑같고 배 속에 아기만 들어 있는 그런 간단한 상태가 아니다. 특히 초기는 태아 상태가 불안정하다. 집중력이 매우 떨어지고 쉽게 피로해진다. 입덧이니 뭐니 신체 상태가 매우 열악해지고 심리 상태 역시 좋지만은 않다.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의 경우 업무 시간을 두 시간 줄여 주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러겠다고 하기는 어렵다.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어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만약 정말로 운 나쁘게 유산이라도 하게 된다면 며칠 출근을 못 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도대체 회사에서 여자를 왜 뽑아서 월급을 주고 일을 시켜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남자는 이럴 일이 없는데 말이다.

그 다음은 출산 및 출산 휴가다. 적어도 석 달을 ‘쉬는’ 것이니 동료들이 업무를 나누어 맡거나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산모 입장에서는 이 석 달이 쉬는 기간은 아니다.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데 수유를 해야 한다. 젖은 당연히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첫 젖이 돌기까지 통증도 만만치 않다. 낮밤 없이 보채는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아기 자는 사이에 밀린 집안일 하고 토막잠이라도 잠깐 잘 수 있으면 운이 좋은 날이다. 남편이 육아휴직은 그만두고 일찍 귀가라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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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아기가 몸 밖으로 나온 이상 육아는 남의 힘을 빌릴 수 있다. 주변 사람을 ‘착취’하거나 돈을 잔뜩 들이는 것이다. 운 좋게 아기를 봐 줄 사람을 구해 업무로 복귀했다 해도 밤중의 수유나 기저귀 교체로 인해 잠이 부족하기 십상이다. 피치 못하게 늦거나 결근하는 경우도 생긴다. 신경이 쓰여 전화 등으로 아기 상황을 체크하기도 한다. 모유 수유를 고집하는 경우 낮 동안 젖을 짜서 모아야 하는데 따로 이를 위한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 화장실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일을 마치기 무섭게 집으로 뛰어간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 한쪽에 죄책감은 남고 늘 허덕거린다. 이 시점까지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계속 갈등할 수밖에 없다. 회사 입장에서도 마음에 안 드는 구석 투성이일 터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직장 여성들이 아이를 선뜻 낳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스스로도 힘든데 눈치도 봐야 하고 구박까지 받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 차원에서 저출산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저출산 기본계획이니 보완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들 지금처럼 출산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한 출산은 직장 여성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 직장을 그만두지 그래, 라고 쉽게 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요즘 같은 시대에 직장 여성이 마음 편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가 여성의 출산을 당연히 예상가능하고 마땅히 수용해야 하는 변수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고 동료의 임신과 출산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환경 말이다.

영국에서라고 임신·출산, 더 나아가 육아가 힘들지 않을 리는 없다.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의 임신 등으로 인한 업무공백을 메우는 것이 아무렇지 않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임신·출산 및 육아와 관련해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 일이다. 제도가 이러하니 직장 동료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공백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적어도 차별하거나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현할 수는 없는 분위기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마침 동료 변호사에게서 건강히 출산을 했다는 e메일을 받았다. 한참 전에 휴가에 들어갔는데 이제야 아기를 낳고는 거리낌 없이 자랑 e메일을 돌린다. 다들 축하해 줄 것이라고 당연히 기대하면서.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말로 대단한 일 아닌가. 지금까지 없던 존재를 힘들게 키워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그 자체로도 우선은 축하해 마땅한 일이다. 동료 아닌가.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