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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 비공개 회담서만 사드 언급…“양국 관계 고려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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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국은 러시아와는 달랐다. 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비공개 회담에선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 하지만 두 정상이 공동으로 진행한 기자회견에선 사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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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오전(현지시간) 중국 항저우 시후(西湖) 국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 등을 논의한 이날 회담은 당초 예상 시간이었던 30분을 넘겨 46분간 진행됐다. 오른쪽부터 박 대통령, 윤병세 외교부 장관, 시 주석, 유일호 경제부총리. [항저우=김성룡 기자]

그러나 중국은 정상회담 뒤 외교부 발표문에 시 주석의 사드 반대 메시지를 명시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 위협과 사드 배치의 정당성을 여러 가지 논리로 설득했다. 러시아 순방을 떠나기 전인 2일 처음으로 언급한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도 철수할 수 있다’는 의미의 ‘조건부 사드 배치론’까지 시 주석 앞에서 꺼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첫 회동
“넓지 않은 내 어깨에 5000만 안위”
박 대통령, 감성적 언어로 설득
시 주석, 반대 입장 바꾸지 않아
중국은 발표문 끝에 짧게 실어

사드 배치 결정의 배경으로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6월 22일)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8월 24일)도 언급하면서 사드 배치로 한반도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도록 억지력을 갖는 것이 “한·중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론 감성적 수사와 언어도 동원했다. “본인의 넓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 등장한 시 주석의 언급 골자는 “사드 배치는 반대한다” “잘못 처리하면 (동북아) 지역 갈등이 커진다”였다. 다만 중국은 시 주석의 사드 반대 입장을 발표문 말미에 짧게 실었다. 정부 당국자는 “두 정상이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 발언에서 사드 얘기를 꺼내지 않고 비공개 회담에서만 언급했다”며 “중국이 사드 문제를 발표문 말미에 배치한 것도 양국 관계의 악화를 우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날 중국은 발표문에서 북한 핵 위협 등에 관한 시 주석의 발언을 전하면서 북한을 지목한 ‘북핵 문제’로 구체화시키지 않았고 기존의 ‘한반도 비핵화’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중국 외교부가 전한 시 주석의 발언은 “중국은 시종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과 한반도 평화 안정 유지에 힘을 기울여왔다. 한반도 문제는 최종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 우리는 6자회담의 틀을 견지하고 각자의 우려 사항을 전면적이고 균형 있게 해결함으로써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함께 쟁취하고 한반도의 장기 안정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와 관련한 논의는 실제 정상회담에선 있었지만 중국 발표문에선 빠졌다. 위성락(전 주러대사) 서울대 객원교수는 “중국이 사드에 대해 대외 입장을 공표한 이상 쉽게 입장을 전환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한·중 간에 많은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드를 논의한 두 정상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두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사드 문제에 대한 인식차를 확인했다는 것도 나름대로의 성과”라며 “향후 사드 문제와 관련해 소통을 계속하기로 한 만큼 대화가 지속되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양측이 사드 문제로 인해 더 이상 관계 악화가 돼선 안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도 이번 회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상 차원에서 직접 사드 문제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진솔하게 얘기하고 관련 이해를 높임으로써 왜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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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박 대통령, 한·미·중 3각 ‘사드 협의’ 제안
② 시진핑 “항저우 임정 3년, 중국이 김구 보호” 음수사원 강조
③ 박근혜 “북핵 해결 땐 사드 불필요” 시진핑 “지역 안정 해쳐 반대한다”



한·중 간 사드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은 사드로 불거진 양국 갈등이 지속될 것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사드 배치를 미국의 대중 견제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한국 정부의 어떤 설명에도 만족감을 표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보일 때 사드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최익재·박성훈 기자 ijchoi@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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