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원칙…미국에 NO 해야 중국에도 NO 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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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해법. 정답이지만 총성 없는 전쟁터인 외교무대에서 지키긴 쉽지 않다. 전문가들에게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물었다.

전문가 31인이 말하는 실천방안
한·미 동맹의 이유 미·중 설득 필요
미국엔 “중국 포위에 활용 말라”
중국엔 “북 위협 대응용” 선 그어야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한국이 없으면 미·일동맹은 중국이 우려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는데 한국이 거기 들어가 있으면 브레이크나 조향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중국에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도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선을 정하고, 양쪽 모두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며 “미국에 ‘No’ 해야 중국에도 ‘No’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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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미·중이 전략게임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선택의 프레임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엔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 해선 안 된다’고 선을 긋고, 미국엔 ‘우리 동맹의 타깃은 북한이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을 포위하는 연합전선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하지 마라’고 말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장관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북핵 6자회담 1차 회의를 앞둔 2003년 5월. 그는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했다. “북한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행동에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아미티지에게 윤 교수는 “북·미가 ‘양자’ 대화를 해야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한국의 입장을 계속 강조했다.

회담 뒤 국무부 인사가 외교부 직원에게 오더니 “당신네 장관이 ‘양자(bilateral)’란 단어를 몇 번이나 썼는지 아느냐. 열 번 가까이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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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김대중(DJ)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채택한 공동성명엔 한국이 원칙을 지켜 얻어낸 성과가 담겼다. 양측은 정상회담 당일 새벽까지도 성명 문구를 타결하지 못했다. 대만 관련 조항이 문제였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DJ가 표명해주길 원했다. 그러나 한국은 92년 한·중 수교성명에서 밝혔던 “‘하나의 중국’을 견지한다”는 입장에서 더 나갈 수 없다고 버텼다. 북한 관련 조항에 더 진전된 내용을 넣어주겠다는 ‘유인구’에도 넘어오지 않자, 중국 측은 결국 한국 입장을 수용했다. 성명은 양국 관계를 ‘선린우호 관계’에서 ‘21세기의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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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가 소식통은 “중국의 입장을 일부 반영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게 협상단의 생각이었다”며 “홍순영 외무부 장관도 ‘끝까지 해보라’고 힘을 실어줬고, DJ도 지시 하나 없이 외교라인에 신뢰를 보냈다”고 전했다.

위성락(전 주러 대사) 서울대 객원교수는 “우리 외교의 좌표와 방향을 정립해 주요국들에게 알려 불필요한 기대를 키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주요국들이 잡아당기는 힘에 휩쓸린다”고 지적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아태 지역 중견국들과 사이버 안보, 기후변화 대응 등에 관한 협력의 장을 주도하고 이를 점차 안보 등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미·중 간 전략경쟁 속에서 제3의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익재 팀장, 유지혜·박성훈·서재준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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