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으로 바닷물 온도 6도 올라, 콜레라균 왕성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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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후진국 감염병인 콜레라가 15년 만에 발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59세 남성 회사원의 가검물에서 콜레라균이 확인됐다고 23일 발표했다. 콜레라는 감염력이 강한 1군 법정감염병이며, 2001년 이후 국내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2003년 이후 발생한 환자 57명은 모두 해외에서 감염됐다. 15년 만의 콜레라 발생에는 사상 최고의 무더위가 한몫했다. 정기석 질병관리본부장은 “날이 더워서 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게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50대, 경남서 회 먹어
가족·직장동료 감염 여부 검사
균, 염분 좋아해 어패류 통해 감염
음식 익혀 먹고 물은 끓여 마셔야
적절히 치료 받으면 사망률 1%

보건 당국에 따르면 이 남성은 지난 9일 저녁부터 심한 설사를 하자 10일 광주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자체 검사에서 콜레라 양성이 나와 보건소에 신고했고 22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는 항생제 등의 치료를 받고 증세가 사라져 20일 퇴원했다. 콜레라 관리 지침에 따르면 설사 증상이 사라진 후 48시간까지만 격리하도록 돼 있다.

이 남성은 부인, 두 자녀와 함께 경남 바닷가에 피서를 다녀왔으며 두 지역에서 회를 먹었다. 보건 당국은 이 과정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고 횟집을 폐쇄한 뒤 생선·물을 수거해 검사하고 있다. 이 남성의 가족과 직장 동료, 같은 병실(2인실) 환자는 아직까지 증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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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 당국은 이들이 증세가 없는 ‘무증상 감염자’일 가능성이 있어 균 검사에 들어갔다. 콜레라 환자의 80%가 무증상 감염자이며 이들이 많이 감염시킨다. 횟집에서 균이 검출되면 손님을 추적 조사할 방침이다. 2001년 영남 지역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콜레라 유행(162명 감염) 때도 시작은 횟집이었다. 보건 당국 관계자는 “이 남성이 행선지를 정확하게 대지 못해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해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콜레라균은 염분을 좋아해 바닷물에 서식하다 어패류를 통해 사람에게 옮긴다. 바닷물의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조은희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장은 “올해 무더위 때문에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콜레라균이 더 증식하고 활동력도 올라갔다. 이로 인해 사람한테 옮길 개연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예년의 남해안 바닷물 온도는 22~24도인 반면 올해는 28~30도를 기록했다. 다른 경로로 감염됐을 가능성도 있다. 조선영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콜레라균은 음식이나 물을 통해 사람한테 들어가는데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감염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콜레라는 상하수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유행하는 후진국형 수인성(水因性) 감염병이다. 아시아·아프리카 등에서 많이 발생한다. 오염된 어패류를 섭취하거나 오염된 지하수를 마시면 감염된다. 주로 날것이나 설익은 해산물을 통해 전파된다.

균의 잠복기(감염 후 증상 발현까지 걸리는 기간)는 2~3일(최소 6시간~최대 5일)이다. 갑작스럽게 통증 없이 쌀뜨물 같은 설사를 하거나 구토를 동반한다. 전해질을 신속히 보충하거나 중증일 경우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 적절하게 치료받으면 사망률이 1%에 못 미친다. 조 교수는 “물과 음식물은 끓이거나 익혀 먹어야 한다. 대변을 본 후 손을 깨끗이(30초 이상) 씻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광주=최경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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