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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OECD의 점심 계산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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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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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라이프스타일부 차장

“탄산수 마신 사람 누구지? 와인 마신 사람은?” 3년 전 연수차 프랑스 파리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근무할 때다. 당시 우리 부서 회식 풍경은 이랬다. 10여 명이 함께 사무실 근처 식당에 간다. 소소한 동네 식당이다. 점심 세트메뉴는 전채+메인+디저트 3코스 가격이 24.99유로(약 3만원), 2가지를 고르면 19.99유로(약 2만4000원)다. 식사 주문은 각자 한다. 3코스, 2코스, 메인 요리 하나만 먹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탄산수·와인·수돗물(공짜 물) 등 마실 것까지 더하면 어느 한 명도 같은 조합이 없다.

식사를 마치면 그날 웨이터가 휴대용 단말기를 들고 테이블로 와서 각자 지불해야 할 몫을 알려준다. 탄산수와 와인 마신 사람을 ‘색출’하는 일은 이때 일어난다. 같은 음료수 희망자가 서너 명이면 대(大)병을 시키는데, 이를 마신 사람들이 나눠 내기 위해서다. 주문 코스에 따른 각자의 밥값에다 음료수 n분의 1 가격을 더하고, 추가 커피 등을 개인별로 계산해 내는 게 웨이터의 몫이다. 파리의 서비스가 한국보다 낫다고 느낀, 몇 안 되는 장면이다.

서구 문화에서 더치페이는 새로울 것도 없다. 다만 이 ‘엄격한’ 더치페이 방식은 인상적이었다. 전체 밥값을 더해서 사람 수로 나누는 ‘느슨한’ 더치페이가 아닌, 오롯이 자기가 먹은 것을 철저히 가려 지불하는 ‘엄격한’ 더치페이에서는 왠지 모를 비장함마저 느꼈다. 이날이 특별히 기억나는 건 퇴사하는 동료의 송별 점심이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그도 자기 밥값을 냈다.

아주 사적인 모임도 예외가 아니었다. 알코올과 수다가 고픈 이들이 ‘번개’ 술자리를 만들 때가 있다. 아주 드물게 “안주는 내가 쏜다”는 사람도 있지만 술자리에서도 ‘엄격한’ 더치페이가 원칙이다(안주를 시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인과의 만남도 다르지 않다. 회원국 관료, 민간단체, 언론인, 다른 국제기구 담당자를 만나 식사할 때도 ‘엄격한’ 더치페이가 룰이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이 확정됐다. 김영란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더치페이법’이라는 별칭이 의미 전달은 더 명확할 것 같다. 3만원(식사 접대 제한금액) 미만의 식당을 열심히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1만원이든 5만원이든 각자 먹은 만큼 내는 게 핵심이다.

부패를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OECD가 6월 발간한 ‘한눈에 보는 한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G7 국가 중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부패한 나라로 인식돼 있다. “이 나라 정부에 부패가 만연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77%였다. OECD 평균(63%)이나 G7 평균(59%)보다 월등히 높았다. 부패돼 있다고 인식된 나라는 실제로 혁신지수도 낮았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부정부패를 끊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더치페이법’의 올바른 시행이 필요하다. 새 판을 짤 수 있는 기회다.

박현영 라이프스타일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