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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수영장의 기적’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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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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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승 현
편집국 EYE24 차장

너무 익숙하면 진가를 잊고 산다. 출퇴근 길에 매일 보면서도 감흥이 사라진 한강도 그중 하나다. 돌이켜보면 처음 상경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게 한강이었는데….

듣기만 했던 서울 한복판의 강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 커다란 강을 대수롭지 않게 시내버스로 건너는 서울 사람들의 스케일에 주눅이 들었다. 한강은 도시를 빛내는 웅장한 대자연이었다.

익숙해지면서 점점 멀어졌던 한강이 요즈음 다시 관심을 끈다. 각종 스포츠는 물론 짧은 산책에도 좋고 주변 맛집도 늘었다. 모르는 사이 불꽃 축제, 물싸움 축제, 달빛 서커스 등 페스티벌도 많이 생겼다.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한강은 서울시 총 면적의 15분의 1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한강 방문객이 6000만 명에 이른다. 서울 시민이 뽑은 ‘서울의 진짜 매력’ 1위인 휴식 공간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도 "즐거운 한강, 편안한 한강, 안전한 한강, 아름다운 한강 공원을 만들겠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강과 다시 가까워지면서 가족들과 수상택시를 타고 63빌딩 수족관에 가거나 한강유람선을 탄 소중한 추억도 생겼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여름에는 6개의 한강 수영장과 가까워졌다. 특히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인 입장료가 매력적이다. 저 멀리 경기도·강원도 워터파크까지 막힌 길을 뚫고 가서 수십만원을 쓰는 것에 비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월등하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43만여 명이 한강 수영장을 찾을 정도로 여름 명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수년 전 국정감사나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던 수질 문제도 고발이 뜸해졌다. 최근엔 워터슬라이드 등 놀이 시설까지 선을 보이고 있다.

더 칭찬을 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다. 한강수영장은 ‘싼 게 비지떡’ 이미지를 아직 벗어나지는 못했다. 수질이 개선됐다지만 서울시의 이름을 걸고 1등을 자부하는 수준은 아니다. 직원들은 워터파크의 민간인을 따라가지 못하고, 컵라면 등을 먹는 편의 시설은 뭔가 어설프고 불편하다. ‘5000원짜리 수영장이 이만하면 훌륭하지’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다.

그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워터파크나 호텔 수영장에서나 누릴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한강수영장의 기적’ 같은 일일까. 1000만 서울 시민이 가진 고작 6개의 한강수영장에서 세계 최고의 서비스는 불가능한가.

우리 아이들에게 값싸면서도 깨끗하고 세련된 수영장을 선물하기에는 우리가 낸 세금이 부족한 걸까.

30년 전의 촌놈을 감동시켰던 한강이 서울의 1등 매력을 고수하고 있다면 한강수영장은 구색 맞추기 정도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 그 정도는 돼야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서울 시민과 국민의 자부심에도 부합한다.

김승현 편집국 EYE24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