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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못 찾는 첨단 온실 재배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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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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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2013년 봄. 당시 동부그룹 계열 동부팜한농이 운영하던 경기도 화성 화옹간척지의 대형 유리온실에 간 적이 있다. 테니스 동호회의 야유회 길에 그 회사에서 근무하던 회원 한 분이 “볼 만한 토마토 농장이 있으니 들러보자”고 했다. 그곳은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었다. 온실은 10만㎡(약 3만 평)가 넘었다. 햇볕의 양, 온도·습도는 자동 조절되고, 양분은 파이프를 통해 공급됐다. 줄기마다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일반 농가의 서너 배가 넘는다고 했다. 동부는 그 유리온실을 앞세워 첨단 농법을 야심 차게 추진했지만 ‘우리를 다 죽일 셈이냐’는 농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사업을 접었다. 동부의 ‘국내 판매 없는 전량 수출’ 약속도 농민들은 믿지 않았다. 동부팜한농은 그룹의 경영난 속에 LG에 팔렸다.

2016년 여름. 토마토·파프리카를 두고 LG와 농민단체 간 갈등의 골이 깊다. LG CNS는 새만금 간척지 내 76만2000㎡(약 23만 평)에 해외 투자자와 손잡고 3800억원을 들여 첨단 온실, 연구개발(R&D) 단지 등을 만들 계획을 밝혔다. ‘스마트 바이오 파크’ 사업이다. 농민단체는 다시 저지에 나섰다. 전북도의회는 ‘LG 농업 진출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반발이 거세자 LG는 주춤한 모양새다. 사업 포기설까지 흘러나왔다.

농업과 첨단 기술의 접목은 세계적 추세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중국·호주는 대형 스마트 팜 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은행·도요타 등 상당수 기업이 농업에 진출하고 있다. 미국은 한 해 매출이 20조원에 가까운 몬산토 같은 회사가 농업 시장을 주도한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로 농업시장 개방의 파고는 높아지는데 우리 농업은 초라하다. 고령화 속 대부분은 영세농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 수준에 불과하다.

경쟁력을 잃어 가는 농업을 살리고 미래 유망산업으로 키우려면 첨단 기술 도입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과제는 만만치 않다. 경쟁력 강화엔 누구나 동의하지만 농업을 경쟁력을 우선으로 하는 산업으로만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동부는 농민 설득에 실패했고 LG도 실패한 듯하다. 농민과 기업 간에 신뢰가 없다. 갈등은 풀리지 않는다. 그 대가는 상당하다. 동부는 467억원이 들어간 유리온실을 한 중소기업에 170억원에 팔아야 했다. 농민들은 대기업 진출을 저지시켰지만 남는 게 없다. 유리온실을 인수한 그 회사는 ‘수출 유예 기간’을 앞세워 토마토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농민들이 반대하던 국내 시장 판매다.

기업과 농민 갈등이 한창이던 2013년 4월 정부는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국민공감농정위원회’를 만들었다. 농민·기업인의 상호 이해와 협력, 정부의 갈등 조정을 담은 ‘기업의 농업 참여 가이드라인’도 나왔다. 지금 정부와 농정위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끔 회의는 하는 듯한데 농정위원회 홈페이지는 2014년 6월에 멈춰 있다.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