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혼선만 일으킨 박 대통령의 “부지 재고”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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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 결정은 고도로 강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능력에 대한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방어 조치다. 그런데도 의사결정 과정의 절차와 방법이 졸속이어서 역풍을 맞고 있다. 정부가 흔들리면 근거 없는 전자파 괴담이나 사대주의적인 중국 보복론, 이념성 짙은 결사반대론만 난무하게 된다. 정부는 정치권의 의지를 모으고 국민의 의사를 통합하는 데 온 정성과 실력을 기울여야 한다.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가 배치될 성주를 비롯해 대구·경북(TK) 출신 초선 의원들에게 “성주 군민의 불안감을 덜어 드리기 위해 성주군이 추천하는 새로운 지역에 대해 정밀하게 조사·검토해 그 결과를 국민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겠다”고 한 발언은 부적절했다. 그 이틀 전 국무회의에서 “(성주 성산포대가)최적이며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던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배치의 취소를 요청하는 성주 국회의원 앞에서 ‘불안감 덜어 준다’ ‘새로운 지역 추천’ ‘조사·검토’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니 어느 누군들 사드포대 지역을 바꿀 수 있다는 말로 듣지 않겠는가.

뒤늦게 정연국 대변인 등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사드 지역을 바꾸겠다는 게 아니다” “성주 주민과 소통을 성실하게 하겠다는 뜻”이라며 대통령이 쏟아낸 말을 주워 담으려 했다. 대통령의 발언, 특히 안보 관련 발언은 한마디 한마디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외교적 파장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언제나 신중하고 태산처럼 무거워야 한다. 국익 우선은커녕 지역 이기, 집단 서명에만 정신을 팔던 TK 의원들에게 무슨 민원을 들어 주는 모양새를 갖춰줄 때부터 박 대통령의 접근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

소통은 문제 해결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자기와 정서적으로 친밀한 TK 의원이 아니라 사드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 같은 야당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끝장 토론으로 그들을 설득하거나 간절한 호소로 감동이라도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