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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계 경제엔 먹구름 짙은데 한가한 정부의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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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경제가 통화전쟁과 보호무역이란 외부 충격으로 내수와 수출이 동반 침체되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그제 7년5개월 만에 금리 조정에 나서 기준금리를 기존 0.5%에서 0.25%로 낮췄다. 이는 1694년 BOE 설립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인데 추가 인하 가능성도 열려 있다.

주요 경제대국의 자국 통화 무제한 살포 경쟁은 미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찍어낸 뒤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일본은 2013년부터 아베노믹스를 통해 대규모 통화 공급에 나섰고, 지난 2일에도 300조원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며 아베노믹스 2탄을 쏘아올렸다. 지난해 수차례 금리와 지급준비율 인하에 나섰던 중국도 성장률 저하를 막기 위해 추가 금융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독일을 제외한 세계 5위권 경제대국이 모두 돈을 풀어 살길을 찾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올 11월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 양당은 경쟁적으로 보호무역을 앞세워 표몰이를 하고 있다. 개방경제 체제를 통해 거의 수출로 먹고살다시피 하는 한국으로선 이런 충격이 몰려오기 전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통화전쟁과 보호무역이란 거대한 쌍끌이 파도 앞에 크게 휩쓸릴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경제를 책임진 대통령과 정부, 국회의 인식은 한가롭고 태평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연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회복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 한국 경제는 성장률이 최근 3분기 연속 0%대 행진을 벌여 저성장이 고착화할 조짐을 보일 만큼 약화돼 있다. 현재 경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건설경기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마저 가계부채 폭탄을 짊어지고 있어 미국이 풀린 돈 회수에 나서면 언제 폭삭 주저앉을지 모른다. 오죽하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일 “단기간에 경기가 개선되기 어렵다”고 보고서를 냈겠나.

더구나 한국 경제의 생명줄인 수출은 지난해 무역규모 1조 달러가 무너지더니 이젠 역대 최장 기간인 19개월 연속 수출 감소 행진이다. 통화전쟁에 따른 원화 강세와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본격화하고 중국과의 갈등까지 에스컬레이트되면 풀 죽은 내수를 더욱 냉각시킬 수 있다.

대비책은 하나밖에 없다. 좀비 기업의 퇴출과 해운·조선을 비롯한 공급 과잉 업종의 구조조정을 차질 없이 진행해 산업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정공법이다. 이미 본격화된 스마트카·사물인터넷(IoT)·로봇공학·바이오 같은 4차 산업혁명의 기선 잡기 경쟁에서 치고 나가 지체 없이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개원 두 달 만에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규제만 1000건 넘게 만들어낸 국회도 우물 안에서 나와 밖을 내다봐야 한다.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직시하고 한국 경제가 살길을 찾는 데 힘을 쏟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