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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반성문 발표하면서 수상식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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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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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지난해 7월 28일 황교안 총리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사실상 종료를 선언했다. 186번 환자를 끝으로 23일 동안 신규 발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딱 1년 만인 지난달 29일 정부가 메르스 백서를 내놨다. 책임지는 리더십이 없었다거나 중동식 독감으로 오판한 일 등을 통렬하게 지적한 반성문이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개편하거나 의료감염국을 신설하자는 대안도 적절해 보인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만든 다른 여느 백서보다 알차다.

복지부는 이날 메르스 극복에 기여한 의료진 39명과 국립중앙의료원(기관 표창)에 훈장·표창장을 수여했다. “환자가 돌아가시면 안 된다, 그런 생각으로 한 시간 이상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메르스 환자 심폐소생술 도중 감염된 건양대병원 신교연 간호사(국민포장)의 눈물 어린 수상 소감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들만이 수상 자격이 있는 게 아니다. 중환자실을 지키며 편지로 임종을 대신한 을지대병원 간호사, 자신의 혈장을 치료용으로 제공한 환자, 묵묵히 격리에 응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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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반성문을 공개한 날에 유공자 수상식을 한 점이다. ‘티 나는 이벤트’가 어느 누구에게는 아픔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확산에 기여한 것 같은 병원도 수상자에 들어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인 74번 환자 이모(72)씨는 지난해 6월 8일 확진 판정 이후 391일째 투병 중이다. 심각한 메르스 후유증에 고통받고 있다. 시상식 소식을 들은 그의 부인(66)은 “바깥양반은 죽는 날까지 산소통 달고 살아야 한다. 열 걸음 걸으면 식은땀을 흘리고 헉헉거린다. 아직 고통받는 사람을 나몰라라 하면서 …”라고 말했다. 남편(80번 환자·35)을 잃은 배모(36)씨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러고 나서 포상해도 상처를 받을 것 같은데…. 그냥 살아가려는 힘과 의지를 꺾네요”라고 한숨 지었다. 35번 환자(의사)는 아직 외과 의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재활치료에 매달리고 있다.

메르스는 현재진행형이다. 공식 종식(지난해 12월 23일) 7개월여 만에 세리머니를 하기에는 상처가 너무 깊고 넓다. 186명이 감염됐고 38명이 숨졌다. 생존자 상당수는 육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1만6700명의 격리자도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을 리가 없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신종 플루는 ‘성공한 방역’이었지만 메르스는 경우가 다르다. 차라리 내년 보건의 날(4월 7일)에 다른 공로자들과 함께 시상했으면 어땠을까, 참 아쉽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