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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거친 입’ 환구시보를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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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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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논설위원

한·중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눈길을 끄는 중국 신문이 있다. 인민일보(人民日報)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주인공이다. 중국 국민의 감정에 불을 지르는 듯한 격한 보도를 쏟아내 마찰 해소는커녕 사태 악화에 일조하곤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우리 정치인과 기업, 심지어 성주군마저 제재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환구시보는 왜 이리 거친가. 환구시보의 보도가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걸까.

지난 2월 1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언론사 시찰에 나섰다. 대상은 중국의 3대 언론사인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사,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인민일보에 들른 시진핑은 진열된 여러 신문 중 한 신문을 가리키며 “내 사무실에도 이 신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장면이 그날 저녁 TV 뉴스를 통해 고스란히 방영됐다. 시진핑이 콕 집어 가리킨 신문은 환구시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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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이 사무실서 본다는
인민일보 산하 환구시보 지면엔
사드 지지 한국 정치인 입국 막고
성주군 제재 촉구하는 문장 난무
험하고 거친 환구시보 보도 뒤엔
민족주의 정서 파는 상업성 존재
중국 정부 입장 대변하진 않지만
중국의 불만 배출하는 창구 역할

환구시보의 중국 내 위상을 아마도 이보다 더 잘 대변하는 일화는 없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는 인민일보다. 당의 방침, 즉 중국의 나아가는 길을 알고자 한다면 인민일보 문장을 밑줄 쳐 가며 정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제 문제와 관련된 중국의 입장을 엿보려면 인민일보가 아닌 환구시보를 봐야 한다. 이 신문은 국제 뉴스를 전문적으로 보도한다. 문제는 그 보도가 종종 거칠기 짝이 없다는 데 있다.

‘한국이 서해 군사훈련으로 망령되게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한·미가 합동훈련을 계획할 때 환구시보가 머리기사로 보도한 내용이다. 그해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되자 환구시보는 ‘한국은 낭떠러지를 축구장으로 여기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社評)을 실었다. 내용은 더욱 자극적이다. ‘한국이 술에 취한 듯하다’ ‘한국을 손봐줄 필요가 있다’ 등 험악한 표현이 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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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발표되자 환구시보의 협박성 보도가 나왔다. 중국 정부에 다섯 가지 조치를 건의한다며 ‘사드 배치에 찬성한 한국 정계 인사의 중국 입국을 제한하고 그 가족의 기업을 제재하라’ ‘사드 배치와 관련된 기업과의 교류를 중단하고 그 회사 제품의 중국 수입을 불허하라’고 촉구했다.

며칠 후 사드 배치 부지로 성주군이 결정되자 이번엔 ‘중국은 성주군과의 모든 교류를 중단하고 성주군에 대한 제재 조치를 연구해야 한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미사일로 사드를 겨냥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표현은 거칠고 내용은 협박에 가깝다. 여타 중국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보도 양태다. 물론 환구시보가 한국에만 거친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다. 미국과 일본, 대만 심지어 북한도 환구시보로부터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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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시보 보도는 왜 이렇게 거친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상업성 추구다. 개혁·개방의 바람과 함께 중국 언론사 또한 오래전부터 무한경쟁의 시장으로 내몰렸다.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보단 직접 돈을 벌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환구시보는 그 탄생 자체가 상업성 추구와 밀접하다. 환구시보는 1993년 초 인민일보 산하의 ‘환구문췌(環球文萃)’라는 이름의 주간 신문으로 창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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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시보의 총편집(總編輯·제작총괄)을 지낸 허충위안(何崇元)에 따르면 창간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외국의 여러 선진적인 경험을 중국 독자들에게 소개하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제부에 근무하는 많은 기자의 보너스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인민일보엔 특파원을 포함해 국제부 기자가 많았지만 지면은 작았다. 이에 인민일보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국제 기사를 환구문췌에 게재하고 그 글에 대해선 원고료를 지불하는 형식으로 기자들의 생계를 지원하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한데 이게 히트를 쳤다. 우선 창간 시기가 좋았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보다 더 대담한 개혁·개방을 주문한 92년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중국인들의 국제 소식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기사의 품질도 높았다. 인민일보 특파원의 글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인민일보 기자는 보통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한 인재들로 문장력과 취재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환구시보의 가장 큰 경쟁력은 거의 독점적인 국제 뉴스 보도에 있었다. 여느 중국 언론사의 경우 해외에 특파원을 두고 있지 않다.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신화통신사의 보도를 받아 쓴다. 이에 반해 환구시보는 세계 각지에 나가 있는 인민일보 특파원을 활용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했다.

시장의 반응은 좋았고 97년 환구시보로 개칭해 2001년 주 2회, 2003년 주 3회, 2006년 주 5회를 거쳐 2011년부터는 월~토요일 주 6회 발행의 일간지가 됐다. 기사는 시장에서 독자의 구미를 당길 수 있도록 철저하게 상업성에 바탕을 두고 제작된다. 대중에 영합하기 위한 구어체 위주의 거친 표현이 많아지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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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시보가 거친 두 번째 이유는 현재 환구시보의 총편집인 후시진(胡錫進)과 관련이 깊다. 환구시보 보도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게 사설이다. 환구시보는 원래 사설이 없었다. 2009년 4월 영자지를 창간하면서 사설이 없으면 신문 같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에서 사설을 싣기로 했다.

사설은 누가 쓰나. 논설위원(評論員)이 쓰는데 환구시보의 경우엔 거의 모든 사설을 후시진이 쓴다. 처음엔 논설위원이 쓰고 이를 후시진이 고쳤는데 몇 글자 안 남기고 다 고치는 경우가 많아지자 아예 자신이 직접 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에 팀을 짰다. 몇몇이 사설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후시진이 구술한다. 이를 또 다른 사설 정리 담당자가 후시진과 토론하며 정리하는 형식이다.

후시진에 따르면 사설이 필요한 시점은 국제적으로 관심이 모이는 사안에 대해 중국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이때 중국이 소리치지 않으면 중국이 손해 본다고 그는 생각한다. 문제는 사설을 쓰는 후시진이 중국의 대표적인 매파에 속한다는 점이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60년생인 후는 중국인민해방군 난징(南京)국제관계학원을 나와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러시아 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89년 인민일보 국제부에 입사했다.

93년부터 3년간 보스니아 내전을 취재했고 2003년엔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는 등 화약 냄새 물씬 나는 전투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격정적이고 또 호전적이다. 그가 내세우는 명분은 국가 이익 수호다. 그는 미디어는 외교부나 정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미디어의 방식대로 국가 이익을 지킬 뿐이라고 한다. 그런 그에겐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쏟아진다. 그는 곧잘 중국의 ‘4대 악인’ ‘10대 악인’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런 이가 쓰는 사설이 점잖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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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중요한 건 환구시보가 중국 정부의 입장을 어느 정도나 대변하느냐 하는 점이다. 중국 언론은 흔히 ‘당의 목구멍과 혀(喉舌)’로 불린다. 당의 대변자란 이야기다. 당의 방침을 인민에게 전하는 도구로서 당이 엄격하게 통제한다. 환구시보는 당 기관지 인민일보 산하의 매체라 그 보도를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중국 정부가 정색을 하고 입장을 표명하는 건 아직도 인민일보를 통해서다. 후시진은 자신이 사설을 쓸 때 상부와 상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자유롭게 외국을 비판할 수 있는 언론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 또한 수년 전 우리 측에 비슷한 입장을 전달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환구시보를 한낱 상업지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후시진이 사설을 쓸 때 상부의 지시를 받지는 않더라도 교감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진핑의 2월 행보는 환구시보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환구시보는 중국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는 통로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배출하는 창구는 된다. 환구시보는 매일 200만 부를 발행한다. 주요 독자는 화이트칼라 등 지식인 계층이 많다. 환구시보의 인터넷 사이트인 환구망(環球網) 방문자 또한 하루 1000만 명이 넘는다. 특히 중국의 고위 정치 지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원로가 사라진 중국 정계에서의 당내 파벌 경쟁은 일반 여론의 지지를 받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론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환구시보의 ‘한국 때리기’ 보도를 일개 상업지의 선정적 보도로 흘려보낼 수 없는 이유다.

우리로선 환구시보 보도에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돕고 만일 사실과 다른 보도가 나올 경우에 대해선 강력하게 그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그런 보도가 중국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도록 중국에 대한 공공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유상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