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느 출판사 대표가 책을 두 권 들고 신문사로 찾아왔다.
그 책은 보리출판사와 변산공동체학교 대표인 윤구병(73) 선생의 신간이었다.
우편으로 보내지 않고 구태여 들고 온 이유를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꼭 직접 전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속에 맘이 담겨 있는 것을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윤 선생의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안부를 물었다.
“올봄 보리출판사 대표직을 권한 대행에게 넘기고 변산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요즘은 막걸리도 한 잔씩 할 정도이니 좋아 보이십니다”고 그가 답했다.
간암 판정을 받은 지 오래된 윤 선생의 근황,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가 간 후 책을 펼쳤다.
『내 생애 첫 우리말』 5장의 소제목이 ‘더 많은 우리가 우리말로 살았으면 좋겠어’였다.
윤 선생을 만난 게 지난해 9월이다.
당시 병원 치료를 받지 않는 이유를 그에게 물었다.
“징글맞게 오래 살았어요.
병이든 교통사고든 이 나이에 죽으면 다 자연사니 병원 치료도 안 받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말하고선 파안대소했다.
유난히 검은 피부에 하얀 이빨을 그냥 드러내고 거리낌 없이 웃는 웃음,
어느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웃음이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그랬다.
윤 선생이 당신의 웃음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얼굴을 한번 보세요. 뻐드렁니에 입이 툭 튀어나왔죠.
가만있으면 화내고 있다고 오해를 받아요.
그래서 웃습니다. 일종의 ‘생계형 웃음’이죠. 아프고 나서 더 많이 웃습니다.”
과연 웃음이 나올까 싶은 상황에도 보여주는 천진난만한 웃음,
그는 그것을 ‘생계형 웃음’이라고 했다.
그 웃음이 중국화가 웨민쥔(岳敏君)의 그림 속 인물과 닮아 있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특유의 인물 캐릭터로 널리 알려진 그림이라
인터넷으로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찾은 그림을 윤 선생에게 보여줬다. 그것을 본 윤 선생이 또 파안대소했다.
한참을 웃더니 윤 선생이 한마디 덧붙였다.
“바보가 돼서 남을 즐겁게 해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웃는 웃음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인터뷰 마지막에 당신의 속내를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행복해요. 그런데 티를 내기가 뭣해요.
행복하지 않은 세상에 행복하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도 지금 행복한 건 사실입니다.”
당신 스스로 ‘생계형 웃음’이라고 했다.
아프고 나서 더 많이 웃는다고 했다.
바보 웃음으로 남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분명 ‘생계형 웃음’이라고 했건만,
어쩌면 그 웃음이 ‘행복형 웃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