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포들은 왜, LG만 떠나면 터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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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병호(30·미네소타)·정의윤(30·SK)·박경수(32·kt)·최승준(28·SK) 등 4명의 공통점은. 모두 프로야구 LG 트윈스에 있다가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에야 기량이 만개한 타자라는 점이다. 프로야구 팬들은 이를 가리켜 ‘탈(脫) LG 효과’라고 부른다. LG에선 부진하다가 팀을 옮기기만 하면 거포 본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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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4번타자 정의윤은 29일 수원 kt와의 경기에서 4회 투런홈런(시즌 16호)을 터뜨리며 SK의 7-4 승리를 이끌었다. 정의윤은 지난해 LG에서 트레이드된 이후 장타를 펑펑 터뜨리고 있다. SK 타선은 올시즌 최승준이 가세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전날 kt전에서 5번 타자로 출전한 최승준은 3연타석 홈런(시즌 12·13·14호)을 쏘아올리며 SK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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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준은 이달에만 10홈런에 22타점을 기록 중이다. 지난달 12일 인천 두산전에서 장원준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때린 뒤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지금 페이스대로라면 올시즌 40개가 넘는 홈런도 바라볼 수 있다. OPS(출루율+장타율)는 1.051로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들과 비교하면 4위에 해당한다. 6월 한 때 7위까지 떨어졌던 SK는 최승준의 활약 덕분에 4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정의윤에 이어 올해는 최승준이 SK의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10년간 2홈런 만년 유망주 최승준
올 SK서 타격폼 바꿔 벌써 14홈런
작년 이적 정의윤도 16호포 활약

최승준은 미완의 대기였다. 인천 동산고 시절 포수를 맡았던 그는 한때 투수 류현진(29·LA 다저스)과 호흡을 맞췄다. 최승준은 타고난 힘을 인정받아 2006년 LG에 전체 51번으로 입단했다. 2013·14년에는 퓨처스(2군)리그 홈런 1위에 오르면서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군 무대에만 서면 그는 작아졌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통산 2홈런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개막전 4번타자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8경기에서 타율 0.077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때문에 ‘2군 배리 본즈(메이저리그 최다인 762개 홈런 기록 보유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붙었다.

LG는 결국 최승준을 기다리지 못했다. 지난해 말 자유계약선수(FA) 정상호를 SK에서 영입하면서 최승준을 20인 보호선수명단에서 제외했다. 지난 시즌 도중 정의윤을 영입해 큰 성공을 거뒀던 SK는 지체없이 최승준을 스카우트했다. 지난해 LG에서 32경기에 출전해 홈런 없이 타율 0.258, 7타점에 그쳤던 정의윤은 SK 유니폼을 입은 7월 이후엔 59경기에서 타율 0.342에 14홈런·44타점을 기록했다. SK는 최승준이 ‘제2의 정의윤’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SK 정경배 타격코치는 지난 겨울 일본 전지훈련장에서 최승준의 타격 폼을 확 뜯어고쳤다. 눕혔던 배트를 세웠고, 손의 위치를 낮췄다. 테이크백 동작을 간결하게 해 배트 스피드를 빠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승준은 3월 시범경기에서 극도로 부진했다. 당초 김용희 SK 감독은 최승준을 지명타자로 기용하려 했지만 그는 시범경기 15경기에서 타율 0.100에 2홈런·3타점에 그쳤다. 삼진이 전체 타석의 절반이 넘는 25개나 나왔다.

정경배 코치는 “타격 자세를 고치려면 6개월은 걸릴 것으로 봤다. ‘삼진을 당해도 좋다’고 격려했지만 최승준은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자 초조해 하면서 예전 폼으로 되돌아 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난달 18일 롯데 린드블럼을 상대로 8회 역전 만루홈런을 친 뒤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아직 완전한 폼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잘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 코치는 또 “외국인 타자도 넓은 잠실구장에 서면 부담을 느낀다. 최승준도 그랬을 것이다. SK에 온 뒤 꾸준히 경기에 나가면서 마음이 편해진 걸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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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적한 박경수·정의윤에 이어 올해는 최승준마저 활발한 타격을 보이자 LG는 입맛이 쓰다. 물론 LG가 홈으로 사용하는 서울 잠실구장은 홈에서 좌우 펜스까지의 거리가 100m, 중앙펜스까지가 125m나 된다. 웬만한 메이저리그 구장보다 넓다. LG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팀 홈런 최하위(94-59-59-90-114개)에 그쳐 ‘소총 부대’란 오명을 뒤집어 썼다. 올해도 팀 홈런 55개로 10개 구단 중 가장 적다. 최승준 같은 장타자가 꽃을 피우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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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0년 이후 LG에 입단해 두각을 나타낸 타자는 박용택(37)·이병규(33·등번호 7번) 등에 불과하다. 그래서 LG의 선수 육성 시스템에 의문을 표시하는 팬들도 많다. 2009년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한 유격수 오지환(26)이 대표적인 예다. 오지환은 여전히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올시즌 1할대 타율(0.184)을 기록 중이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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