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일본 “돈 풀겠다” 브렉시트 방화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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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1차 충격이 시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검은 금요일(24일)’ 하루에만 세계 증시에서 2조5400억 달러(약 3000조원)가 증발했다. 브렉시트는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킬 것인가, 세계 경제를 또 대침체(Great Recession)로 몰고 갈 것인가.

뉴욕증시 하락, 투매는 없어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30개국 중앙은행 공조 선언
일본 114조, 영국 400조 준비

2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상황이 미래를 예측하는 참고가 될 수 있다. 다우지수(-3.4%)와 S&P 500지수(-3.6%)가 크게 떨어졌지만 ‘패닉’은 아니었다. 지난해 8월 24일 차이나쇼크 때 뉴욕 증시에선 1300번의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했다. 주가가 급락할 때 일시적으로 주식 거래를 중단시키는 조치다. 이번엔 40회 정도 발동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융위기 기록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전했다. 브렉시트와 금융위기는 다르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우선 위기의 본질에서 차이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란 화약 더미에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란 불씨가 튀면서 발생했다. 불길은 삽시간에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에 번졌다. 세계 경제는 대침체로 치달았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금융위기가 아닌 정치 위기”(크리스 개프니 에버뱅크월드마켓 회장)다. 경제 시스템에 고장이 난 것은 아니란 얘기다.

금융위기에서 익힌 학습효과도 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영국·일본·한국 등 주요 30개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25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회의에서 ‘경제적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상호 공조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영국은행은 이미 2500억 파운드(약 400조원) 투입을 밝혔다.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도 유동성 공급을 약속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각국 중앙은행에 통화스와프 라인을 통해 달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엔 각국에서 달러가 씨가 마르는데도 통화스와프에 소극적이었다.

Fed는 기준금리 인상도 당분간 접을 것으로 보인다. Fed가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한국은행은 금리를 낮출 여지가 생긴다. 일본 정부는 경기부양 규모를 10조 엔(약 114조66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26일 전했다. 종전에 계획했던 부양 규모인 5조 엔의 두 배 수준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 세계 교역량이 줄겠지만 2008년과 같은 광범위한 금융위기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속단은 금물이다. 조지 소로스는 25일 해외 석학들의 기고 사이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 전 세계 금융시장이 장기간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추가이탈 움직임 등 불안은 앞으로도 시장을 뒤흔들 것이다. 세계 경제의 성장률 저하도 예상된다. 금융위기가 갑작스러운 뇌졸중이었다면, 브렉시트는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이 돼 오랫동안 경제를 골병들게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유일호 경제팀은 15조~2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경제적 파장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적기에 과감한 시장안정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하남현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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