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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분열 뇌관’ 영남 신공항 논란 종지부 찍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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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300만 영남 주민을 대립과 분열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영남권 신공항이 제3의 길을 택했다. 포화 상태에 도달한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대안이라는 ‘제3자’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경남 밀양이냐 부산 가덕도냐를 놓고 빚어졌던 망국적 지역 갈등을 생각하면 신의 한 수 같은 결론이다.

국토교통부는 어제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1년여 동안 분석해 밀양과 가덕도가 동남권 신공항 입지로 타당하지 않다는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당초 갈등을 부채질한 정치권에서도 대체로 수용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부는 용역 결과를 받아들여 내년에 공항개발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하기로 했다. 현재 수용능력 540만 명을 이미 초과한 김해공항에 활주로와 터미널을 신설하고 도로·철도 등 연결교통망도 확충해 영남권의 항공 수요를 뒷받침한다는 복안이다.

이날 발표에 나선 장마리 슈발리에 ADPi 수석 엔지니어는 “제로 베이스에서 35개 후보지를 놓고 세 곳을 압축했다”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제시하는 공항 입지 기준을 충실히 활용하고, 영남 5개 지방자치단체가 합의한 평가 방식도 반영해 최적의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정치권은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반성하고 이번 결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공항은 정치 논리에 따라 추진되면서 애초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해 잡음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확고한 경제 논리로 그 허구가 드러났다.

공항은 전형적인 내 집 앞마당 사업(핌피·PIMFY)으로, 영남권 신공항 역시 “우리 지역에도 공항을 갖고 싶다”는 지역 민원을 2009년 정치권에서 덥석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됐다. 그러나 비용편익(B/C) 분석 결과 두 곳 모두 기준치 1을 밑도는 0.7선에 그치면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자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백지화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공약으로 되살렸고, 2014년 정부는 타당성 조사에 나섰다. 이후 영남은 두 쪽으로 쪼개져 서로 할퀴며 지난 세월을 보냈다.

수요가 있으면 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업 성장을 뒷받침하고 지역 발전을 도와 결국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민원에 휘둘리고 선심성으로 결정돼 전국에 들어선 14개 지방공항은 대부분 적자에 허덕인다. 울진공항은 비행기 한 번 띄워 보지 못했다.

이번 결과는 국민 세금이 최소 12조원 투입되는 신공항을 소수의 정치인이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으로 추진하는 것은 4대 강이나 세종시 정부청사처럼 국가적 혼란과 비효율만 초래할 뿐이란 사실을 다시 보여줬다. 이제 공은 무책임하게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로 넘어갔다. 항공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김해공항을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영남권의 관문으로 신속하게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이 정부가 국민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다. 영남권 허브 공항은 김해공항을 확장한 다음 신중하게 따져봐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