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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기업 사무실 때 빼고 광내고…우리 청소 솜씨, 미국 본사 표준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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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남몰래 해야 빛이 나는 직업이 있다. 이성재(54) 캠드라이코리아 대표의 일도 그렇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 기업이나 공공장소에 깔린 카펫과 사무용 천의자, 대리석 바닥의 때를 벗기고 먼지를 제거한다.

이성재 캠드라이코리아 대표
대기업·공공기관 카펫 청소 도맡아
“정주영 회장 검소한 방 기억에 남아”

캠드라이는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 1위 카펫·바닥청소 기업으로 한국엔 1991년 진출했다. 세계 45개국에 4000개 가맹점이 있지만 청소 기술 하나 만큼은 한국법인이 기준이다. 본사가 새로운 청소 기계가 나오면 “한국의 이성재 대표에게 보이고 평가를 받으라”고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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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캠드라이코리아 대표가 경기 시흥시 본사에서 카펫 전문 청소기계인 ‘파워콤보’를 작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다른 외국 법인 대표와 달리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직접 현장에 나가 작업한다. [사진 김성룡 기자]

이 대표는 “김칫 국물, 짬뽕 국물을 빼려고 이것 저것 약품을 섞어가며 연구하다 보니 서양에서 어려워하는 와인 정도는 쉽게 지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캠드라이는 국내 10대 대기업과 코엑스·킨텍스 등 공공기관, 정부기관의 카펫·바닥 청소를 도맡고 있다. 삼성은 한달에 한번 꼴로 LG는 석달에 한번 꼴로 청소한다. 고객 명단이 곧 회사의 실력인 셈이다.

지난 91년 다니던 제약회사를 관두고 켐드라이 인천을 맡아 창업한 이 대표는 외환위기로 한국 법인이 철수하게 되자 무작정 통역을 대동하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제 청춘을 바친 회사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청결한 바닥 청소 문화를 가진 나라이니 맡겨주시면 책임지고 살리겠습니다.”

이렇게 호소해 그는 코리아대표로 임명됐고, 한국 법인은 부활해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 2곳(서울·평택)을 총괄하고 있다. 현재 45개국 캠드라이법인 중 한국이 국토면적 당 청소기계 보유량과 약품 소비량이 1위다. 한국에서 쓰이는 약품은 모두 미국카펫러그협회(CRI)의 친환경·인체무해 최고 등급인 플래티늄 인증을 받았다. 이 대표가 이를 강조하며 고객 앞에서 종이컵에 청소 용액을 따라 마시는 바람에 사람들이 기겁을 한 적도 있다.

청소인생 25년.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1990년대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서울 성북동 사택이다. “방에 들어간 순간 너무나 검소한 풍경에 깜짝 놀랐어요. 원목침대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고 잠옷은 닳고 닳아 바지 무릎 부분은 색이 많이 바랐더라고요.”

반면 선거운동본부 청소를 마치자 “남들은 선거 자금을 지원해 주는 판에 돈을 받으려 하냐”며 비용 지급을 거부한 유명 정치인, “간 밤에 회장님의 롤렉스 시계가 없어졌다”며 절도를 의심한 금융권 관련 협회 등 억울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역시 보람이 더 크다.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청소가 과거엔 그냥 청소였지만 지금은 건강관리 산업이다, 여러분 부양가족까지 다 직원’이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 30억원에서 4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필리핀 법인을 인수해 오는 9월부턴 세부 지역에도 진출한다. 대표적 관광지인 세부는 1년에 5성급 호텔이 5~6개씩 들어서 호텔 청소시장 전망이 밝다.

글=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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