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권의 군기잡기 표면화됐나”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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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시작되자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10일 “기업들 사이에 정권의 ‘군기 잡기’가 표면화됐다는 얘기가 하루 종일 돌았다”고 말했다. 권력 누수를 차단하려는 정권의 의도가 실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낸 발언이다. 김수남 검찰총장 직속이자 ‘제2중수부’로 불리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된 지 이틀 만에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가 동시에 롯데를 겨냥했다는 점 때문에 재계는 더욱 긴장하고 있다.

“경기 회복 찬물” 우려 목소리도
검찰 “정치권 수사 확대는 먼 얘기”

두 기업 외에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이 많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부영그룹 이중근(75)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다. 특수1부는 정운호(51·구속)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롯데면세점도 연루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에서는 평창 올림픽 기반시설인 ‘원주~강릉 고속철’ 공사의 입찰 담합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와 별도로 자체 첩보를 입수해 현대건설·두산중공업·한진중공업·KCC건설을 지난 4월에 압수수색했다. 이 부서에서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앞두고 주식을 매각한 의혹이 있는 김준기(72) 동부그룹 회장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이번에 롯데 수사를 시작한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조현준(48) 사장 등 효성 전·현직 경영진의 횡령·배임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치적 국면을 전환하려고 기업에 칼을 들이댄다는 느낌이 있다. 이렇게 채찍을 휘두르면서 경기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오정근(65)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정권이 강하게 사정 드라이브를 걸면 오히려 저항만 생길 수도 있다.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롯데그룹 수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롯데 수사가) 정치자금이나 뇌물 등 정계 수사로 확대된다는 건 상당히 먼 얘기다. 충분한 내사를 통해 비리 혐의가 있는 것을 들여다보는 순수한 기업 수사다”고 말했다.

문병주·문희철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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