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 "차라리 클린턴 밀 것"…트럼프 "샌더스 표 40% 흡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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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굳어지면서 미국 대선에서 보수·진보, 민주·공화의 전통적 대결 구도가 무너지고 있다.

네오콘 “강력한 제3후보 나올 것”
트럼프 당선 저지 결사대로 나서
트럼프 “샌더스와 공통점 있다”
민주당 백인 지지층 끌어안기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공화당 주류였던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일부 인사들이 ‘트럼프 절대 불가’를 외치며 제3후보에 이어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을 거론하고 나선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선 버니 샌더스를 찍었던 표심 일부가 트럼프로 이동할 가능성이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를 놓고 집토끼 네오콘이 분노하고 산토끼 샌더스 지지층은 트럼프에서 대안을 찾을 수도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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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의 대부를 자임하는 보수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트럼프를 대신할) 제3의 후보가 나올 것”이라며 “강력하며 기회를 지닌 인물”이라고 공언했다. 크리스톨은 트럼프를 백악관에 들어가게 해선 안 된다며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를 만나 제3후보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던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다. 트럼프는 곧바로 “크리스톨은 패배자”라며 “훼방을 놓는 제3후보를 세우게 해선 안 된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크리스톨을 포함한 네오콘들은 트럼프 저지를 위한 최후의 결사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부는 제3후보가 실패하면 차라리 클린턴을 선택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이라크전 지지자였던 맥스 부트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종말”이라고 선언했다. 두 달 후엔 언론 기고에서 “(이라크전에 찬성했던)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대외 정책에서 더 원칙적”이라고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네오콘 정책의 이론가였던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당은 망해도 이 나라는 산다”며 “유일한 선택은 클린턴”이라고 주장했다. 네오콘이 트럼프를 혐오하는 이유는 이라크전을 비난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하며 미국의 군사적 개입주의에 반대하는 트럼프가 당을 장악하고 대통령에 오를 경우 네오콘이 설 땅을 완전히 잃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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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민주당 진영에선 샌더스 지지표 일부가 향후 트럼프로 이탈할 가능성이 가시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NBC방송의 올 1∼4월 여론조사에서 샌더스 지지자 중 클린턴과 트럼프의 맞대결 때 트럼프를 찍겠다는 비율은 10%였다. 클린턴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81%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5월 같은 기관의 조사에선 샌더스 지지자 중 클린턴을 찍겠다는 응답은 66%로 줄었다. 대신 트럼프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17%로 늘었고, 투표를 않겠다는 응답도 17%나 나왔다. 이는 치열한 경선을 거치면서 샌더스 진영과 클린턴 진영 간의 골이 깊어졌고 이 때문에 샌더스 지지자들의 클린턴에 대한 반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가 기대하는 건 어부지리다. 트럼프나 샌더스나 워싱턴 기득권 정치를 공격하고 세계화에 따른 백인 노동자 계층의 일자리 상실을 문제 삼는 데선 닮은 꼴이다. 트럼프는 샌더스를 비난하면서도 “샌더스와 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게 통상 분야”라며 “샌더스도 나도 우리가 당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샌더스 지지자들의 40%가 나를 지지한다고 들었다”며 샌더스 지지층 흡수를 장담했다.

트럼프의 등장은 오는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또 다른 진풍경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를 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확정하는 전당대회의 ‘트럼프 추대식’엔 공화당 거물들이 전례 없이 불참할 것을 예고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조지 HW 부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존 매케인, 밋 롬니 전 대선 후보가 불참 의사를 밝혔다. 올해 경선에 나섰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불참을 선언했다. 켈리 아요테 상원의원을 비롯해 공화당 상·하원의원 10여명도 지역구 일정 등을 이유로 불참한다고 폭스뉴스에 밝혔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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