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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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남역 인근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사회운동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칼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범인은 정신병력을 가진 30대 남성으로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한 네티즌이 트위터에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 계정을 만들고 ‘“여성 폭력·살해에 이제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라며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 쪽지를 남기자는 메시지를 올렸다. 이를 계기로 추모에 동참하는 행렬이 점점 늘어나며 강남역 10번 출구는 추모쪽지와 국화로 뒤덮였다.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여자라 살해당했다’ 등 쪽지는 단순 추모가 아닌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개탄이 주를 이뤘다. 추모 카페가 만들어지고, 촛불 문화제와 추모제 등의 일정과 계획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초경찰서 측은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앓는 범인의 단순 살인”이라며 여성혐오 범죄와 선을 긋는다. 전문가들도 “범죄자들이 약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경향성을 보여준 사건”이라거나 “범인 진술 하나만으로 여성혐오 범죄로 몰아가 사회가 들썩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사건은 정신병력 범인의 묻지마 범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의 중요성은 어쩌면 단순 살인일 수 있는 범죄에 여성들의 분노가 결집하는 ‘현상’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 여성들의 폭력에 대한 불안감이 이 사건을 계기로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성폭력은 해마다 늘어 2014년 10만 명당 58.2명으로 10년 전(2005년 23.7건)보다 2.5배나 늘었고, 범죄 불안감을 느끼는 여성은 2010년 67.9%에서 2014년 70.6%로 해마다 늘고 있다. 데이트 폭력 등 여성 대상 폭력은 점차 잔혹해지고 있다. 이젠 우리 사회가 여성 대상 범죄의 실태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실질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