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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의사, 변호사, 그리고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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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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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26세 취준생 송군은 끝내기 한 수를 잘못 뒀다. 교직원을 사칭해 1차 시험 주관 기관을 알아내고, 그곳에서 시험지를 훔쳐 1등으로 통과했다. 본 시험을 치른 뒤엔 정부 청사에 잠입해 45점을 75점으로 고쳤다. 일사천리의 007급 성공이었다. 그런데 합격자 수를 조절하지 않았다. 합격자 명단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바람에 수가 66명에서 67명으로 불어났다. 이는 담당 공무원이 뭔가 잘못됐음을 눈치채도록 하는 단서가 됐다. 완전범죄를 위해서는 응시자 한 명의 성적을 낮춰 명단에서 뺐어야 했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 순간에 다른 젊은이들도 자신만큼 공무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양심적’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28세 의대생 박군은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5년 전 같은 과 학생에 대한 집단 성추행에 가담해 다른 의대에서 쫓겨나고 2년 반의 징역형을 받은 그의 과거를 다른 학생들이 최근에 알아버렸다. 학생들은 그를 내쫓으라고 학교 본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꼭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영철 전 대법관은 최근 변호사 활동을 하기 위해 서울변호사회에 개업신고서를 냈다. 신고서는 대한변호사협회로 보내졌는데 이 단체는 지난 6일 이런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전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권력과 명예를 누린 사람이 돈까지 가지려는 것으로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 행위이자 도도히 흐르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몰지성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신 전 대법관을 영입한 법무법인 측은 “대한변협 스스로 변호사는 명예롭지 않은 직업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공무원, 의료인, 변호사는 많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오늘도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가 그 직업을 얻기 위해 ‘노오력’하고 있다. 그리고 박군 사태나 신 전 대법관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직업이기도 하다.

20대 총선의 지역구 후보 944명 중 121명이 법조인 출신이다. 전직 공무원은 이보다 더 많다. 의사·약사 면허를 가진 의료인은 30명(비례대표 후보는 4명)이다. 명예나 부 에 권력까지 보태려는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닌지 이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오늘 유권자들은 과연 그들의 말대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려고 나선 것인지, 아니면 더 큰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감투를 쓰려는 것인지 한 번 더 살펴봤으면 좋겠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