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경찰 출동한 날에도 청사 침입…“제주도 출신 합격자 없었는데…" 들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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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 송모(26)씨는 2월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정부서울청사에 총 다섯 차례 잠입했다. 1차 때는 채용관리과가 있는 16층 복도까지 진입했다. 지난달 24일 3차 때는 채용관리과 내부에 침입해 컴퓨터 접속을 시도했고, 26일의 4차 때 끝내 컴퓨터 보안시스템을 뚫고 성적 조작에 성공했다. 그는 조작 이후인 지난 1일 다시 청사에 침입했다. 이날 청사에는 인사혁신처의 수사 의뢰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있었다. 송씨와 경찰이 청사에 머문 시간 중 상당 부분이 겹친다. 하지만 그는 이날도 무사히 빠져나갔다.

5차례 침입해 총 25시간 머물러
슬리퍼 신고 다니며 직원 행세도

송씨가 ‘정부의 심장부’를 누비고 다닌 시간을 모두 합하면 만 하루가 넘는다. 폐쇄회로TV(CCTV) 영상이 지워져 체류 시간을 확인할 수 없는 2차 침입 때를 제외해도 25시간 이상이다.

다섯 차례 정부청사 휘젓고 다닌 송씨

2월 28일(일): 오후 5시~7시30분
의경들 틈에 섞여 청사 진입, 체력단련실서 출입증 절도

3월 6일(일): 오전 11시~미상(공무원 시험 다음날)
도어록 옆에 적혀 있는 비밀번호 발견, 사무실까지 침입

3월 24일(목): 오후 4시45분~다음날 오전 1시32분
지하 1층의 차량진입로 통해 진입, 사무실 PC 접속 시도

3월 26일(토): 오후 8시47분~다음날 오전 5시50분
PC 비밀번호 해제 프로그램 활용해 합격자 명단 조작

4월 1일(금): 오후 5시30분~10시25분
범행 발각 여부 확인하기 위해 훔친 출입증 이용해 잠입

◆정문·후문·지하 출입구 모두 뚫렸다=송씨가 처음 청사에 침입했을 때 이용한 문은 후문이다. 주변을 돌아본 송씨는 담을 넘는 것이 어렵겠다고 판단해 후문에서 의경들 틈에 섞여 청사에 진입했다. 외출·외박 뒤 복귀하는 의경들이 몰리는 일요일 오후라 가능했다.

2차 잠입 때는 경로를 바꿨다. 1차 침입 시 체력단련실에서 훔친 출입증으로 후문 민원실 게이트를 통과하려 했지만 분실신고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정문에서 신분증을 보여준 뒤 청사에 진입했고, 체력단련실로 가 다시 출입증을 훔쳤다. 3차에서는 또 다른 통로를 찾았다. 지하 1층 주차장 쪽 출입구였다. 방호원에게 훔친 출입증을 보여주고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벽에 버젓이 적혀 있던 비밀번호=첫 시도에서 사무실 내부 침입에 실패했던 송씨는 2차 때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몇몇 사무실 출입문 옆 벽에 네 자리 숫자가 적혀 있다는 점이다. 이를 도어록에 입력하자 문이 열렸다. 비밀번호를 누군가가 옆에 적어 놓은 것이었다. 송씨는 이날 목적지인 채용관리과 비밀번호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3차 때는 그 사무실 출입문 모서리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비밀번호를 찾아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에 따르면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의 비밀번호 중에는 ‘1234’ ‘5678’ ‘0000’ 등 보안에 취약한 조합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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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도어록 비번 안 써놨다” “PC 암호 걸었다”…모두 거짓말
② 인사혁신처 ‘도어록 옆 비밀번호’ 쉬쉬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송씨는 2차 침입 때부터 배낭에 슬리퍼를 넣어 청사로 들어갔다. 슬리퍼는 의경 또는 직원으로 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채용관리과 사무실 비밀번호를 알기 전에는 야간 근무자를 찾아가 직원인 척하고 사무실 열쇠 꾸러미를 받아 가기도 했다. 이 열쇠로 문을 열진 못했다. 송씨는 기자실, 탕비실 등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때를 기다렸다. 그 누구도 그를 수상히 여겨 신분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결국 송씨의 성적 조작은 지난달 30일 담당 과장이 합격자 수가 49명에서 50명으로 불어나고 없던 제주도 출신 합격자가 갑자기 생긴 점을 수상히 여겨 들통났다. 조작한 지 4일 뒤였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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