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진핑 매형, 푸틴 측근도 유령회사 세워 재산 은닉 의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 도피 실태가 세상에 드러난 건 파나마의 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1100만 건의 문서를 통해서였다. 제보를 통해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에 입수된 자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소속 78개국 107개 언론사의 분석으로 공개됐다.

파나마 ‘모색 폰세카’서 유출
전·현직 국가 정상 12명 포함
푸틴 이름은 명시 안 됐지만
측근 통해 2조원 흘러들어가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로 불리는 문서는 미국 외교 기밀문서를 공개한 2010년 위키리크스,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도·감청을 폭로한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문서보다 방대한 분량이다. 여기엔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고객 명단과 이들의 금융 거래 내용이 포함됐다.

기사 이미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조세 도피에 연루된 이 중 143명은 정치인과 그들의 친인척·측근이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시그뮌뒤르 귄뢰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 이야드 알라위 전 이라크 총리 등 12명의 전·현직 국가 정상이 여기 포함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매형, 리펑(李鵬) 전 중국 총리의 딸 등 중국 고위층 인사 8명의 가족 이름도 명단에 올랐다. 이들이 재산을 은닉하고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몇 가지로 추려진다.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워 돈의 출처와 주인을 숨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무기명 주식·채권을 이용하고 제재 대상 국가와의 거래로 재산을 불리기도 한다.

공개된 명단 중 외신이 가장 주목한 인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가디언은 “20억 달러(2조3000억원)의 역외 거래가 푸틴에게 흘러갔다”고 전했다. 거금은 푸틴의 ‘사금고’로 지목되는 로시야은행, 러시아 국영 VTB은행이 조세피난처인 키프로스에 세운 자회사, 로시야은행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유령회사 ‘샌들우드 콘티넨털’을 거쳐 러시아의 리조트기업 오존으로 흘러들었다. ‘샌들우드 콘티넨털’이 러시아 국영은행에서 8억 달러(9200억원)를 빌렸다는 기록도 나왔다.

그러나 담보를 제공하거나 되갚았다는 기록은 없었다. 본인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자금 흐름의 출처와 종착지가 푸틴과 지나치게 가깝다. 푸틴의 오랜 친구인 첼리스트 세르게이 로두긴은 로시야은행의 지분 3.2%를 갖고 있고, 오존 리조트에서 푸틴의 둘째 딸이 결혼했다. “아파트와 차 말고는 재산이 없다”던 로두긴은 최소 1억 달러(115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600만 달러(69억원)의 빚을 1달러로 탕감받는 등 수상한 거래로 자산을 쌓았다.

|청룽도 유령회사 6개 소유
아이슬란드 총리 사임 압박

귄뢰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는 문서 공개로 사임 압박을 받고 있다. 그는 2007년부터 부인과 함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2009년 의회에 입성하면서 자신의 지분을 1달러에 부인에게 팔았다. 유령회사는 물려받은 유산을 굴리는 데 사용됐고, 2008년 금융위기로 무너진 아이슬란드 은행 채권 수백만 달러어치에도 투자했다. 그는 자신의 회사가 정부와 협상 중인 채권단의 일부라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세 회피범을 적극 추적하느냐는 의회의 질문에 “그런 정보를 획득하는 일이 현실적이고 유용한지는 불분명하다”고 얼버무리기도 했다.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와 홍콩 배우 청룽(成龍) 등 유명인사도 명단에 포함됐다. 메시는 스페인에서 유령회사를 통한 탈세 수사를 받는 중에 모색 폰세카를 통해 파나마에 ‘메가스타엔터프라이즈’라는 새 유령회사를 설립한 것이 드러났다. 청룽도 모색 폰세카가 관리하는 회사를 최소 6개 소유하고 있었다. 모색 폰세카는 고객들이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설립한 로펌이다. 역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중 세계 넷째 규모이며, 30만 개가 넘는 유령회사를 운영해 왔다. 문건 폭로에 따른 의혹에 대해 모색 폰세카는 성명에서 “40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비난받을 만한 범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세청 3년 전엔 1324억원 추징=국세청은 2013년 역외 탈세 의혹에 대해 대대적으로 조사를 벌였다. 뉴스타파가 그해 5월 182명의 한국인이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재산을 빼돌렸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56)씨, 이수영(73) OCI 회장, 최은영(53) 유수홀딩스 회장(당시 한진해운 회장) 등이 명단에 포함됐다.

국세청은 자체 조사와 함께 미국·영국·호주 세무당국과의 공조를 통해 한 달 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주요 조세회피처의 유령회사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A4용지 1억4000만 장에 이르는 이 자료에는 역외 탈세가 의심되는 405명의 한국인 명단이 담겼다. 국세청은 자료를 분석한 뒤 혐의가 짙은 인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였다. 이런 사실은 2014년 10월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당시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국세청이 48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여 1324억원을 추징했다. 이 중 전재국씨, 이수영 회장, 오정현 전 SSCP 대표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홍주희·하남현 기자 hongh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