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다 돌려면 하루 30km"…"난 크고 작은 섬만 해도 109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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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면적의 10배인 곳도…공룡 지역구 뛰는 후보들의 현장  

요즘 제 별명은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불가능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고 해서죠.”

새누리당 황영철 후보의 선거구인 철원-화천-양구-인제-홍천의 면적은 서울(면적 605㎢, 49개 지역구)의 10배에 육박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달랑 1명만 뽑는다. 황 후보는 “5곳을 다 돌려면 하루에 300㎞ 이상 이동해야 한다”며 “차 기름값은 둘째 치더라도 유세 일정에 시간을 맞추느라 하루 종일 맘 졸이며 내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백령도 주민 만나려면 뱃길 220km
읍·면 50개인 곳도…다 돌기도 빠듯
"인구로 선거구 나누니 부작용 속출"

그의 말은 앓는 소리가 아니다. 선거구를 재획정하면서 황 후보의 지역구는 전국에서 가장 넓은, 말 그대로 공룡 선거구(5697㎢)가 됐다. 가장 면적이 작은 선거구인 서울 동대문을(6㎢)의 948배에 달한다. 인근의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선거구(5122㎢)도 매머드급 면적이지만 황 후보 지역엔 못 미친다.

도서 지역을 끼고 있는 거대 선거구 후보들의 고충도 만만찮다. 이들은 유권자들을 찾아 섬을 오가며 ‘메뚜기식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해남-완도-진도 선거구(1849㎢)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영록 후보는 “지역구 내 크고 작은 섬만 해도 109개다. 섬에 들어가 선거운동을 하다가 배가 끊길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못 들어가고 섬에서 숙박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인천 중-동-강화-옹진 선거구(723㎢, 인천 면적의 69%) 후보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곳에 출마한 새누리당 배준영 후보는 “선거사무실이 있는 동인천역에서 백령도까지 무려 220㎞”라며 “산 넘고 물 건너 유세활동을 펼쳐야 하는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험지”라고 했다. 이런 험지에 출마한 후보들은 급한 대로 가족까지 동원해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배 후보는 “백령도·연평도에 가서 어르신들에게 인천에서 왔다고 하면 왜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왔느냐며 오히려 놀라신다”고 전했다.

산청-함양-거창-합천 선거구(3307.3㎢)엔 4개 읍과 46개 면이 있다. 인구밀도가 ㎢당 50명 안팎에 불과하다. 하루 4곳씩 방문해도 공식 선거 기간(3월 31일~4월 12일) 내에 전체 읍·면을 한 차례씩 방문하기도 빠듯하다. 더민주 권문상 후보는 “지역이 너무 넓어 식사도 대부분 차 안에서 하고 논두렁·밭두렁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악수하고 명함을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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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관계자는 “너무 넓은 선거구의 주민들은 후보들의 면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선거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인구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라고 했다.

최소 면적 동대문을과 공룡 지역구 비교

♦서울 동대문을 6㎢(인구 17만6446명) ?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홍천 동대문을보다 948배 큰 5697㎢(인구 20만4063명) ?
♦강원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852배 큰 5122㎢(인구 21만6350명) ?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551배 큰 3307㎢(인구 18만8036명) ?
♦인천 중-동-강화-옹진 120배 큰 723㎢(인구 27만5555명)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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