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알바도 취업?…실업률 4.9%의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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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경제부문 기자

퀴즈 하나. 객관식이니 마음 편하게 풀어보자. ①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전문 학원을 다니며 공부 중이다. ②명예퇴직 후 여러 회사에 원서를 넣었지만 받아주질 않는다. 6개월 전부터는 원서 낼 생각도 못하고 개인사업을 해볼까 고민 중이다. ③얼마 전 은퇴를 했다. 1년 안에 취직하겠단 목표를 가지고 재취업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있다. ④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못했다. 용돈은 스스로 벌어야겠다 싶어서 하루에 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입사 원서를 내고 있다. ⑤구직 활동 짬짬이 부모님 가게 일을 돕고 있다. 가족 일이라 따로 월급은 받지 않는다. 여기서 질문. 5개 사례 중에 실업자는 몇 명일까.

정답은 ‘0’이다. 통계청 기준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실업자는 단 한 명도 없다. ①~③은 비경제활동인구, ④·⑤는 취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실업자인 사람만 가지고 실업률을 낸다. 통계청 집계상 실업자 안에 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1시간 이상 아르바이트를 해서도 안 되고, 학원·학교도 다니지 않아야 한다. 대신 맨몸으로 구직활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한 달만 원서 쓰길 쉬어도 실업자가 되지 못한다. 올 2월 실업자는 100명 중 4~5명(4.9%)이란 통계청 발표에 숨은 진실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실업률이 낮은 나라였다. 물론 현실은 느끼는 그대로 살벌하다. 통계청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숨은 구멍은 더 있다.

2월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4.9%로 한국과 같다. 그러나 미국의 체감 실업률(U6)은 9.7%로 한국의 체감 실업률(고용보조지표3) 12.3%보다 크게 낮다. 이렇게 공식·체감 지표 사이가 벌어진 건 한국의 빈약한 ‘구직 안전망’ 탓이 크다. 실업자와 취업준비생을 위한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공식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가 넓다. 2월처럼 공무원 시험 원서 접수가 있을 때나 ‘22만 공시족’이 수면 위로 드러날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원서 접수나 명절 같은 변수가 덜한 3, 4월에 공식 실업률 수치가 나아질 것이란 해명에 급급하다.

뱃사람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금 자신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내는 거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찾는 건 다음이다.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방향만 따라갔다는 다시 길을 잃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헛도는 배 안에 갇혀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조현숙 경제부문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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