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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모르쇠’ 전략 국익에 도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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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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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달 초 북한이 장거리 로켓(미사일) 광명성 4호를 발사할 무렵 국방부 기자실에선 연일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방부 당국자들을 향해서다. 북한의 서해 위성 발사장(동창리) 움직임이 일본 언론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타전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군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북한이 수일 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미사일 탐지를 위해 (일본의) 이지스함이 출항했다” “미사일에 연료 주입을 시작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반면 사실 확인 요청에 국방부는 “우리 정보가 아니어서…”라며 답변을 피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여전하다. 핵탄두라고 주장하는 물체를 공개하고,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연일 쏴대고 있다. 북한이 스스로 공개하지 않은 내용들까지 ‘친절’하게도 미국 등의 언론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실험을 했다”(22일 워싱턴 프리비컨)거나 “북한 잠수함이 침몰했다”(11일 CNN)는 등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반면 우리 정보 당국은 여전히 입을 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미국·일본의 언론보도, 북한의 위협이나 공갈이 없으면 우리 국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깜깜이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당국의 변명은 이렇다. “우리가 공개하면 미국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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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대북 정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군은 아직 군사위성은커녕 고성능 정찰기도 없다. 하늘에서 북한을 살피는 정보는 전적으로 미국의 ‘선심(善心)’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당국의 입장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난해 말엔 국군통수권자가 나서 정보 보안의식을 특별히 강조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한·미가 공유한 군사 정보가 우리 측을 통해 샜을 경우 이에 따른 ‘대가’도 있었다고 한다. 안개나 구름으로 가려진 영상을 고의로 제공하거나, 미 고위 당국자가 공식 항의하는 등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도·감청 정보 등 인간 정보(휴민트)는 오히려 우리가 미국보다 앞서기도 한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미국과 일본이 언론 플레이를 통해 자국 이익을 챙길 때 입단속에만 바쁜 우리 정부를 보면 안타까움이 크다.

정보는 적절하게 사용하면 효과가 극대화된다. 때로는 북한에 ‘우리가 이미 알고 준비하고 있으니 허튼짓 말라’는 경고가 될 수 있다. 도발과 전쟁 억지를 위한 치밀한 정보 활용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군도 조만간 ‘글로벌 호크’라는 고고도무인정찰기와 군사위성을 갖게 된다. 이젠 ‘모르쇠’ 전략 대신 국익을 위해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