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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손 빼고 변칙···프로기사도 '알사범' 따라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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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알사범’ 알파고 쇼크로 일대 충격에 휩싸여 있던 바둑계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포스트 알파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알파고 쇼크’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살펴봤다.

이달 열린 한·중·일전, 백령배오픈
알파고 수법 베껴 두는 기사 속출

먼저 ‘알파고류’가 등장했다. 알파고의 수를 따라 두는 기사들이 생겨난 것이다. 20일 경남 합천군에서 열린 한·중·일 영재 대결에 출전한 일본의 오니시 류헤이 초단은 중국의 랴오위안허 3단과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정석을 완성하지 않고 손을 빼는 수순을 똑같이 따라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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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인 정석 미완성 10일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2국’에 등장한 알파고의 손빼기 수법. 우하귀 정석을 두면서 13으로 손을 빼는 변칙적인 수순을 보여줬다. 보통은 정석을 끝까지 완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11~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백령배 세계바둑오픈 통합예선에서도 알파고의 수법을 따라 두는 중국 기사들이 속출했다. 목진석 9단은 “알파고 대결 이후 알파고의 기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좋고 나쁜 수를 떠나 알파고의 새로운 수를 시도해보는 프로기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변칙적인 수를 시도하는 프로기사도 늘었다. 현재 진행 중인 엠디엠 여자바둑리그에서 여자 선수들이 창의적인 수를 시도하는 빈도가 크게 높아진 게 대표적인 예다. 홍민표 9단은 “기사들이 그간 해보고 싶었던 수들을 과감히 시도하는 경우가 늘었고 또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평했다. 김영삼 9단은 “알파고의 기보를 본 뒤 프로기사들이 고정관념을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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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어깨짚기 알파고는 2국에서 37로 5선 어깨짚는 수를 선보였다. 사람의 감각을 뛰어넘는 특이하고 과감한 수다. 이후 이런 수를 시도하는 프로기사들이 늘고 있다.

정석에 대한 재검토 바람도 불고 있다. 그간 정석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정석을 달달 외워서 그대로 따라두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 일단 정석을 시작하면 한번에 끝맺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대국을 마친 뒤 “우리가 맞다고 생각해온 정석이 맞는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털어놨다. 권갑용 8단 역시 “ 프로기사들이 권위의식과 독선을 털어버리고 정석을 새롭게 연구하고 토론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인정하고 적절히 활용해 바둑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성룡 9단은 “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의 승률과 인간의 형세 판단을 비교해 바둑 해설에 활용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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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돌바람’을 개발한 임재범 누리그림 대표는 “돌바람도 2년에서 5년 안에 프로기사의 수준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컴퓨터 바둑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바둑에 대한 접근법이나 시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런 변화가 오래 갈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계속 대국을 해서 기보가 쌓인다면 몰라도, 당분간 알파고의 바둑 내용을 보기 어려운데 지금 5국만으로 ‘알파고류’ 같은 흐름이 지속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알파고의 바둑이 기존 바둑을 흔들 만한 내용인지 회의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창호 9단은 “알파고가 승리한 건 맞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수도 많았다”며 “경기 내용을 좀 더 연구하고 찬찬히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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