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당 막장 공천에 민심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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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일 사실상 마무리된 새누리당 4·13 총선 공천은 한마디로 친박계와 친김무성계를 위한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천된 현역 의원 51명 면면을 보면 친이명박계와 친유승민계가 대부분이다. 반면 친박계와 김무성 대표 계열 핵심 현역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친이계는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주호영·조해진 등 핵심 멤버들이 줄줄이 탈락했고 유승민계도 김희국·류성걸 등 6명이 낙천해 ‘폐족’ 위기에 처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역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뚜렷한 이유 없이 컷오프됐다. 반면 친박계는 막말 파문 윤상현 의원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공천됐다. 김무성계 역시 비서실장 김학용 의원을 비롯한 측근들이 줄줄이 살아남았다. 김 대표 본거지 부산에서도 컷오프된 현역은 제로다. 이번 공천이 친박계와 김 대표의 암묵적 교감 속에 이뤄진 ‘그들만의 리그’였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은 과거 재·보선에서 ‘혁신작렬’ 같은 구호를 외치며 민생에 신경 쓰는 척이라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흉내조차 생략하고 ‘진박 마케팅’ 같은 꼼수와 공천 싸움에만 혈안이 됐다. 그 결과 정책 선거는 완벽히 실종됐고 후보 선정도 지연을 거듭했다. 선거구 획정 연기로 자신의 거주지가 어느 지역구에 속하는지 알 수 없었던 유권자들은 후보들 됨됨이를 파악할 시간마저 없이 총선을 치르게 됐다. ‘깜깜이 선거’의 결정판이다. 정통성에도 심각한 흠결을 안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정청래 등 친노 핵심들을 대거 컷오프시켰다. ‘여당 때리기’밖에 몰랐던 선거 전략도 확 바꿔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정책 정당’ 변신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에서 나오는 얘기라곤 살생부·막말·옥새 같은 시대착오적 음모론과 정쟁뿐이다. 새누리당은 탈락된 중진들이 야당으로 말을 바꿔 타면서까지 출마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더민주는 낙천자 대부분이 승복하며 백의종군하는 것도 다른 점이다. 같은 물갈이라도 여당은 ‘진박’을 위한 물갈이를 했고, 야당은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물갈이를 한 결과일지 모른다.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을 믿고 이런 막장 공천을 해도 큰 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민심을 그렇게 얕봤다간 큰코다친다. 19일·20일 경선에서 진박 후보들이 줄줄이 낙천한 게 이를 입증한다. 박근혜 대통령 밑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윤두현 후보가 대구 서구 경선에서 유승민계 김상훈 의원에게 패해 탈락했다. 윤 후보와 함께 인증샷 퍼포먼스를 벌이며 ‘진박’을 자처해온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과 박 대통령 밑에서 춘추관장을 지낸 최상화·전광삼 후보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대구에서 자력으로 경선을 통과한 진박 후보는 조원진 의원 한 명 정도다. 새누리당은 지금이라도 민심을 최우선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총선을 불과 20여 일 남겨놓고도 결론을 미루고 있는 유승민 의원 공천 문제부터 상식에 입각해 처리하는 게 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