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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관전평] 머리로는 알파고 승리 예견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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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첫 대국에 대한 관전평을 각계 전문가에게 물었다. '알파고의 승리'에 이은 허탈함을 어떻게 봐야 할지, 프로 9단이 보는 '이세돌의 표정'은 어떤지, 구도와 예술로서 바둑에 대한 의미 등을 짚어본다.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머리로는 알파고의 승리를 예견했지만, 가슴으로는 너무 큰 충격이다. 이세돌 9단의 팬으로서 버텨주길 바랬다. ‘아직은 자연지능에게 인공지능은 안 돼’라는 기대가 있었다. 나는 줄곧 알파고의 5대0 승리를 예견했다. 모든 언론인터뷰에서 알파고가 다섯 판 모두 이긴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계산’이 ‘직관’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직관’은 ‘계산’을 이길 수가 없다. ‘직관’이 이길 때는 계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뿐이다.

대국 전에 사람들이 ‘알파고의 패배’를 예상할 때 알파고 측에서 한 말이 있다. “저들은 프로그래머가 아니야. 저들은 수학자가 아니야.” 나는 이 말을 ‘수학적으로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이세돌 9단이 이번 대국에서 한 경기만 이겨도 ‘승리’라고 본다. 한 경기라도 이긴다면 정말 천재이고, 두 경기를 이긴다면 인류의 승리다. 인공지능에 대한 자연지능의 승리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의 발달을 두려워할 까닭은 없다. 기술의 발달은 가치중립적이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도 일자리를 빼앗길까봐 겁을 내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잘 활용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을 어떡하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할까. 그게 숙제로 남을 뿐이다.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프로바둑 기사 유창혁 9단=알파고가 생각보다 너무 잘 뒀다. 일단 초반에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얕봤다기보다는 뭔가 테스트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알파고가 너무 잘 받아쳐서 중반까지 이세돌 9단이 불리했다. 중반 이후에는 알파고가 그간 보여줬던 것과 다르게 어이없는 실수를 여러 번 했는데 이세돌 9단도 실수를 했다. 알파고의 실력도 대단했지만, 이세돌 9단이 평소보다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안 좋은 내용의 바둑을 뒀다. 이세돌 9단이 맞는가 할 정도였다. 알기 쉬운 실수도 많았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다. 알파고도 실수가 있다는 걸 파악했으니, 내일은 그걸 잘 활용하면 좋은 내용의 바둑을 둘 것 같다. 이 9단이 여러가지 중압감을 평소에는 핸들 잘한다. 이번에는 중압감도 컸고 대국 표정을 보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빨리 잊을수록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오늘 대국을 통한 알파고 문제점을 파악해서 극복하면 내일은 괜찮을 거 같다.

▶소설가 성석제=사실 이세돌의 기풍은 돌발적인 데가 있다. 사람끼리 둔다면 한 판의 대국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고, 둘 다 무아지경에서도 두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건 기계다. 계속해서 그걸 의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기사 스스로 내부적 균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전기 배선으로 이뤄진 존재가 아니잖나.

사람은 감정으로 움직인다. 사람이 기계에 졌다기보다는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고 본다. 실력 면에서는 아무리 기계가 우수하다 해도 인간을 절대로 능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옛 바둑 격언에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상대가 강하더라도 앞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승부에 초연하게 바둑을 두라는 이야기다. 이번 대국은 정말로, 그것도 인위적으로 앞의 상대가 없어진 반전무인 상황 아닌가. 그런 상황이 오히려 문제가 된 것 같다.

사람끼리의 대국은 명국을 지향한다. 인간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바둑을 두며 무아지경에서 사소한 실수까지 주고 받으면서도 결국 명국을 지향한다. 그런 동반자 의식 같은 게 있다. 그럴 때 바둑은 구도자적이고 예술적인 것이 된다. 승부와 상관 없는 상태,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상대가 기계가 되면 그런 명국을 향한 의욕은 사그러든다. 남은 거라고는 승부 밖에 없는, 형해만 남은 상황이 된다. 그런데서 이세돌 기사가 뭔가 좀 헛다리를 짚는 기분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건 실력 외적인 부분인데, 그것 때문에 무너진 것 같다.

이번 패배를 보며, 뭔가 드라마가 준비돼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대단한 드라마가 생겨나지 않을까. 그게 뭔지는 넘겨짚지 마라.

▶김태우 교육 소셜플랫폼 클래스팅 연구원= 진행이 생각보다 빨랐다. 이세돌 9단이 초반부터 전투를 유도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의 변칙적인 포석에도 바로 강수를 뒀다. 돌의 흐름으로 치자면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초반에는 알파고가 사람처럼 정수만 두고, 이세돌 9단이 비틀어서 뒀다. 중반에 가서 알파고가 좀 느슨하게 두고 흑이 판을 주도하는 느낌이었다.

알파고가 중반 두차례 악수로 불리하다고 느끼는지 사람처럼 흔들기도 해서 인상적이었다. 인공지능이 승부수를 둘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초반 우변에서 이세돌 9단이 너무 당해서 형세가 만만치 않았다. 피 말리는 끝내기 승부가 예상됐고, 결국 이세돌 9단이 졌다. 초반에 이세돌 9단이 너무 시험적인 수를 뒀던 게 아쉽고, 중반에 유리해졌을 때 너무 쉽게 처리해서 역전당한 게 아쉽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세계 최강 컴퓨터라 해도 프로 기사들한테 3점은 놨어야 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놀랍다. 알파고의 실력에 경악했다.

정리=신준봉·백성호·정아람·정진우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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