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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아이 키우는 면허를 준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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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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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대기자

운전면허 시험이 다시 어려워진다. 주차에 필요한 T자 코스와 경사로, 좌·우회전, 교차로, 가속 등을 추가했다. 실격 사유도 신호 위반 등 다섯 가지를 더했다. 시험을 어렵게 만든 건 합격률을 떨어뜨리려는 게 아니다. 면허증을 받고도 이웃집 차를 긁을까 전전긍긍하지 않게 주차를 배울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면허는 최소한 그 일(운전)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익혔다는 의미가 아닌가. 초보라 하더라도.

 살다 보면 우리는 면허증도 없이 어떤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성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교육하고…. 운전은 생명과 관계된 일이라 면허를 따기가 까다롭다. 운전이 서툴러 사고를 내면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그 아이에게는 일생이 걸린 중요한 일 아닌가.

 케이블 드라마 ‘시그널’에 연쇄살인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로부터 어릴 적 학대를 받았다. 어머니는 무서운 세상을 보지 말라고 아들을 가방에 집어넣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라고 약을 먹이고…. 공포 속에서 살아난 이 살인범은 불쌍한 여자들에게 꼭 같은 일을 저지른다.

 어릴 적 경험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한 설문조사를 보면 아동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60% 정도는 학대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순간의 일이 아니라 그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로 이어지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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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인천의 한 수퍼에서 한겨울인데도 맨발에 반바지 차림인 한 소녀가 발견됐다. 여섯 살로 보이는 몸무게 16㎏의 삐쩍 마른 아이는 주인 몰래 과자와 사탕을 허겁지겁 입에 털어 넣었다. 그 아이의 실제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소녀는 3년4개월이나 감금돼 있다 탈출했다. 친아버지는 아이를 굶기고 수시로 때렸다.

 우리와 상관없는, 정신이상자의 이야기일 뿐일까. 그 아버지는 소녀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4~5학년용 문제를 주고 못 푼다고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은 직업도 없이 게임에 빠져 있으면서 아이에게는 시험지를 풀게 하고 버릇을 가르치려 했다. 부천에서는 일곱 살짜리 아들을 두 시간 넘게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도 주 2~3회 한 시간 이상씩 ‘훈육’을 위해 아이를 때렸다고 했다. 부천의 한 목사는 가출했다 돌아온 여중생 딸을 5시간이나 때려 숨지게 했다. 역시 ‘가르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나는 어떤가. 질문을 나에게로 돌리면 자신이 없어진다. 그 사람들만큼 극단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미숙하기는 매일반이다. 게으르고, 서투르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도긴개긴이다. 그 남자처럼 게임이 아니더라도 술 마시고, 도박하고, 혹은 돈을 번다는 핑계로 아이가 애타게 도움을 청할 때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사람들은 자기가 자식보다 세상일을 더 잘 안다고 믿는다. ‘바담 풍’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바담 풍’을 따라 하는 자식에게는 매질을 한다.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느냐고 물으면 자신이 없어진다. 왜? 배운 적이 없으니까.

 한 외교관이 오래전 뉴질랜드에 근무할 때 경험을 들려줬다. 첫아이를 출산하는데 도움 받을 사람이 없었다. 난감했다. 그런데 지방정부의 보육담당자가 집으로 방문해 아기를 목욕시키는 방법, 우유를 먹이는 방법 등 자잘한 일까지 자세히 반복 교육해 주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외국인인데도 보육수당까지 지급했다고 한다. 어른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말 못하고 저항도 못하는 어린 생명, 아이의 인권을 위한 배려다.

 자식 교육뿐 아니다. 부부 관계는 어떤가. ‘화성남 금성녀’라고 하지만 배우고 이해할 기회가 너무 없다. 경찰이 최근 집중 단속하고 있는 ‘데이트 폭력’도 근본 배경은 이해 부족이다.

 옛날에는 눈으로 보고 배웠다. 그래서 예의범절에 어긋나면 ‘본데없다’고 했다. 요즘도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통을 이어 갈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아버지가 상실된 시대다. 1인 가구 비율도 27.1%나 된다.

 가정 대신 간접경험을 하게 되는 드라마도 기대하기 어렵다. 시청률을 의식한 자극적인 상황 설정이 넘치면서 막장을 일반적인 우리 관행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걸 보고 배우는 게 사실이다.

 종교단체들이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버지 학교, 부부 교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그동안의 생활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한다. 필자도 이런 교육에 몇 번 참여해 봤다. 얼마나 무지했는지 절감했다.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낳기 전에 면허를 따게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일반인도 이런 교육 기회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