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정담(政談)] 양반집 도련님 치겠다던 이한구, 10분간 유승민 압박면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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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 연설 때 했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은 무슨 뜻이었나요?”(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새누리 TK 공천 면접장

26일 오전 11시25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의 대구·경북(TK) 예비후보 공천 면접장. 4선에 도전하는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 차례가 오자 이 위원장은 ‘증세 없는 복지’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였던 지난해 4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 정책을 ‘허구’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유 원내대표의 연설을 매우 불편해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유 의원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지난해 6월)라고 말하게 된 주요한 계기가 당시 연설이었다. 친박계인 이 위원장은 유 의원이 민감해하는 부분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일종의 ‘압박면접’이었다.

 유 의원이 준비해 온 답변을 내놨다.

“그 연설에서 우리 당의 정강정책에 위배되는 대목은 전혀 없습니다. 사전에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내용을 확인한 겁니다.”

유 의원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유 의원은 자신에게 배정된 10분의 면접에서 ‘공손하되 물러서지는 않는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이날 면접은 다른 때보다 유독 시선을 끌었다. 최근 여의도에선 이 위원장이 유 의원을 겨냥한 ‘공천 살생부’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돈다.

이 위원장이 김무성 대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천위원장이 된 게 그런 이유에서라는 말도 곁들여있다. 유 의원이 이른바 ‘진박’ 후보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을 누르고 경선에서 승리할 경우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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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20대 총선 대구·경북(TK) 지역 공천 신청자 면접을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실시했다. 대구 동구을 지역에 공천을 신청한 유승민·이재만(오른쪽) 예비후보가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물론 이 위원장은 “살생부 얘기하는 사람 얼굴 좀 봤으면 좋겠다”고 펄쩍 뛰고 있지만 스스로 ‘양반집 도련님’ 얘기를 꺼내 물갈이론의 불을 지핀 것이 사실이다.

그는 취임 직후 “당에 헌신하지 않고 양반집 도련님처럼 일한 현역 의원은 치겠다(공천 탈락)”고 한 데 이어 유 의원 면접 전날인 25일에도 “대구에 현역 의원이 12명인데 6명밖에 안 날아가겠느냐”고 했다.

그런 이 위원장이 평소 강조해 온 공천 부적격자의 기준이 당론에 배치된 주장을 해왔는지 여부였다. 유 의원도 이를 알고 당의 정강정책을 방어막으로 삼았다. 그래서 면접장을 나온 유 의원에게 기자들이 가장 먼저 물어본 말이 “이 위원장이 당시 연설이 당론에 배치됐다고 하지는 않았느냐”였다.

하지만 유 의원은 “당론 배치란 말은 나오지 않았다”고 답한 뒤 지역구로 향했다.

유 의원과 함께 면접을 본 이재만 전 동구청장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에 대한 본인의 마음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유 의원에 대한 압박면접과는 사뭇 질문이 달랐다. 그는 “대통령이 원칙에 의한 정치를 하는 모습에 공감하게 됐다. 남은 임기 동안 힘을 보태기 위해선 지역 사정에 밝은 내가 공천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 전 구청장 등 TK 지역구 후보자들에게 “당원 명부가 정확한지 파악해 알려 달라”고 주문했다. 현역 의원이 확보해 온 당원 명부가 문제는 없는지 따져보겠다는 뜻으로, 물갈이론과 관련이 있는 주문이었다.

이 전 구청장은 면접 후 기자들과 만나 “10년 전 처음 구청장을 할 때 (유승민 의원 등) 우리 지역 국회의원 두 분이 저를 배제하고 전략공천으로 몰고 갔는데 내가 거기에 투쟁해서 박근혜 (당시) 대표에게 중앙당 공천을 받았다”며 “그때부터 (유승민 의원이 저한테) 지금까지 같은 마음이다(안 좋게 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데이터를 보면 물갈이론이 높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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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진박 후보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대구동갑)도 “19대 국회는 실패했다”며 물갈이론에 가세했다. 반면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대통령을 빙자해 무임승차하는 것은 대구 시민들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하는 일”이라고 ‘진박 마케팅’을 정면 비판했다.

면접을 마친 이 위원장에게 “유 의원이 ‘양반집 도련님’으로 보이더냐”고 물었다. 이 위원장은 “말 못한다”고 했다.

글=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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