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26%P차 질주…급해진 클린턴 ‘아칸소 특공대’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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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일반 유권자가 참여하는 첫 예비선거인 뉴햄프셔주 경선이 9일(현지시간) 열린다. 아이오와 경선에선 힐러리 클린턴과 박빙이던 버니 샌더스가 뉴햄프셔 경선 여론조사에선 클린턴을 크게 앞질렀다. 8일 유세장에서 지지자들과 셀카를 찍고 있는 클린턴. [뉴햄프셔 AP=뉴시스]

8일 오후 1시.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미 동북부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커뮤니티컬리지 강당.

김현기 특파원의 뉴햄프셔 유세장 르포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장은 ‘노인부대’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86명의 특공대”(낸시 투더·65)라 부르는 ‘아칸소 트레블러’였다. 이들은 1992년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빌의 고향인 아칸소주 주민들이 결성한 조직. “클린턴이 고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자비를 모아 사흘 전 이곳으로 왔다”(자나 티터·67)고 했다.

장내에 모인 400여 명의 환호 속에 먼저 빌과 딸 첼시가 등장했다. 빌은 투표를 하루 앞두고도 버니 샌더스 후보와의 격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데 조바심이 났는지 샌더스를 직접 겨냥했다.

빌은 “‘혁명’(샌더스의 구호)을 하려면 ‘사실’이나 좀 제대로 알고 하라”고 비꼬았다. “샌더스 측이 성차별적 사악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사회자의 클린턴의 등단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의 지도자가 누구죠. 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후보는 누구죠, 바로 클린턴입니다!”

연단에 오른 클린턴은 아이오와주 때보다 상기돼 있었다. “월가에서 거액의 강연료를 받아 온 클린턴은 ‘돈의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샌더스의 주장이 젊은이들에 먹히고 있는 것을 의식한 듯 했다.

하지만 참가자가 고령자 위주이고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이 지역에선 ‘샌더스 열풍’이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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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일반 유권자가 참여하는 첫 예비선거인 뉴햄프셔주 경선이 9일(현지시간) 열린다. 아이오와 경선에선 힐러리 클린턴과 박빙이던 버니 샌더스가 뉴햄프셔 경선 여론조사에선 클린턴을 크게 앞질렀다. 8일 유세장에서 지지자들과 셀카를 찍고 있는 샌더스. [뉴햄프셔 AP=뉴시스]

샌더스의 유세장은 열기가 달랐다. 7일 오후 2시 포츠머스시에 있는 ‘그레이트베이 커뮤니티대학’ 강당. 연단에 선 샌더스는 갑자기 상의 재킷을 벗더니 무대 뒤 젊은이에게 던졌다. 그리곤 소매를 걷어붙였다. 실은 ‘젊음’을 강조하려는 연출이었다.

젊은이들이 발을 구르며 함성을 지르고 후보와 청중이 일체가 되는 유세는 아이오와 때와 다름이 없었지만 달라진 점도 있었다. 40~60대의 중년층이 다수 눈에 띄며 저변이 확대됐다. 연설도 클린턴을 정조준하며 강도가 높아졌다.

그는 “미국에서 최근 가장 중요한 외교적 사건은 이라크전이었다. 근데 난 당시 올바른 길을 택했다. 하지만 외교경험이 많다는 클린턴은 잘못된 길을 택하지 않았느냐”며 주먹을 치켜올렸다.

곁에 있던 모하메드 알샤와(49)는 “처음에 사회주의자라고 할 때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그 같은 ‘새로운 지도자’가 미국에 필요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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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발표된 CNN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은 샌더스에 35%대 61%로 26%포인트나 뒤졌다. 클린턴 진영은 “지더라도 표 차를 10% 전후로 줄이면 ‘절반의 성공’”이란 분위기다.

한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투표 전날인 8일 밤에 승부를 걸었다.

대다수 후보들이 300~500명 정도 수용하는 장소를 빌려 유세를 마무리한 반면 그는 맨체스터 중심부 ‘버라이존 아레나’를 통째로 빌려 5000여 명을 모았다. ‘막판 세몰이’로 아이오와에서 당한 일격을 만회하고 ‘트럼프 대세론’을 재점화하기 위해 막판 자금을 푼 것이다.

유세장에 모인 이들은 한눈에 다른 유세장과 차이가 났다. 노동자로 보이는 백인이 대다수였고 눈빛이나 함성도 격했다.

밤 8시가 다 돼 등단한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에 세울 장벽의 이름을 ‘트럼프 장벽’이라 짓겠다” 등의 단골메뉴를 반복한 뒤 부인 멜라니아, 딸 이반카를 소개했다.

이반카를 향해선 “이반카야. 출산 2주일 앞두고 있는 데 오늘 그냥 뉴햄프셔에서 낳으면 안 되겠냐. 그러면 내일 운이 좋을 것 같은데…”라고 농을 던졌다. ‘정책’과는 거리가 먼 ‘원맨쇼’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7일 오후 6시 맨체스터 스포츠 아카데미. 500여 명의 루비오 지지자의 가장 큰 특징은 남녀노소가 골고루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셀카를 찍을 때도 사인에 응할 때도 눈높이를 철저히 유권자와 맞추는 루비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루비오에게 다가가 “북한 미사일 발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오, 쏘리”라며 유세장에선 답변할 수 없음을 미안해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8일 오전 내슈아에 위치한 방산업체 BAE시스템에서의 강연에서 답을 내놓았다.“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이제는 한국·일본·괌·하와이·캘리포니아까지 미치게 됐다. 이대론 안 된다. 미사일방어시스템을 강화하고 현재 10척인 항공모함을 12척으로 늘리겠다.”

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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