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강경론 득세, 의총 23번 중 정책의총은 딱 한 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기사 이미지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 사진)와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6일 각각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 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간 쟁점법안 협상을 위한 회동이 예정돼 있었지만 더민주는 ‘논의에 진전이 없어 회동을 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했다. [뉴시스]

박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 만난 건 2회

야당 비판만 말고 설득 병행해야"

기사 이미지

박근혜 대통령

‘2회’ 대 ‘21회’.

박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 만난 건 2회
야당, 의총선 대부분 투쟁?당분쟁 다뤄
157석 갖고도 호소밖에 할 게 없는 여당

 2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여야 지도부를 만난 횟수, 21회는 박 대통령이 국회를 비판한 발언의 횟수다. 지난해 정기국회 개막일(9월 1일)부터 쟁점법안이 교착상태에 빠진 1월 26일 현재까지의 기록이다.

 법안 통과의 관건인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은 한 번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2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회동했다.

회동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경색된 정국을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한국외국어대 이정희 정외과 교수)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회동을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를 만나지 않았다. 12월 7일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만 따로 청와대로 불러 중점법안의 처리를 요구한 게 두 번째이자 지금까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틀 뒤 정기국회가 폐회(12월 9일)한 뒤부터는 강도 높은 대국회 비판을 계속했다. “국회의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종돼 버렸다”(12월 14일 수석비서관회의), “국회의 비협조로 노동개혁이 좌초된다면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12월 23일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 “국회가 외면하면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1월 19일 국무회의) 등이다.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이 적다는 지적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야당 지도부와 총 여섯 차례 만났다”며 “이는 역대 정권의 영수회담 횟수와 비교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정병국(4선) 의원은 “정치란 야당이라는 파트너와 만들어가는 것이고 야당은 반대를 하기 마련”이라며 “꽉 막힌 국정을 풀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야당을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만 따로 만난 것은 2013년 4월 한 번(당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뿐이다. 나머지는 여당 지도부를 포함한 회동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4회, 이명박 정부는 3회 단독 영수회담을 했다.

고려대 이내영(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대만 하려는 야당도 문제지만 항복을 시키려고만 하는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당, 의총선 대부분 투쟁·당분쟁 다뤄

지도부끼리 갈등, 법 통과 의지 없어"

기사 이미지

문재인 대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9월 1일 정기국회 개원일 의원총회(제79차)를 연 후 26일 현재까지 모두 23번의 의원총회를 열었다. 23번째 의총(101차)은 지난 8일 열렸다. 이 가운데 공식적인 정책의원총회는 지난해 11월 12일(제92차) 한 번뿐이었다.

당시 최재천 정책위의장(현재 무소속)이 청년고용촉진특별법안·통신비경감법안·역사교과서국정화금지법안 등 야당의 10대 입법과제에 대해 의원들에게 설명한 게 전부였다.

법안과 관련해 논의를 한 의원총회는 여야 쟁점법안 협상 결과를 설명한 99차(12월 28일),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100차(12월 31일), 101차(지난 8일) 의총 등 4~5차례뿐이었다.

 나머지 의총은 대부분 ‘투쟁’이나 당 내분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국회 로텐더홀에서의 4박5일 철야농성(2015년 11월 2~6일) 중 개최한 의총 5번을 포함해 9차례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반대하거나 규탄하는 의총이었다.

비주류 의원들의 문재인 대표 사퇴 요구로 불거진 당내 분쟁을 수습하기 위해 긴급 소집된 비공개 의총도 네 번(93, 94, 97, 98차)이었다.

 특히 이종걸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안철수 의원을 주축으로 한 당내 비주류와 문재인 대표 측 간의 갈등에 직접 뛰어들면서부터는 제1야당에서 정책토론이 실종되다시피했다.

이 원내대표는 “문 대표 사퇴 후 통합전당대회를 열자”며 지난해 12월 7일부터 당무 거부를 선언한 뒤 문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사퇴를 공식화하자 44일 만(지난 20일)에야 당무에 복귀했다.

당무를 거부하는 동안 원내문제를 챙기지 않았던 이 원내대표는 25일 “여당이 선거법안과 파견법안의 연계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만날 필요도 없다”며 강경론을 고수했다.

 정책사령탑인 최재천 의원이 12월 10일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며 정책위의장직을 던진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후임자로 이목희 의원이 정책위의장을 맡았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자기들 10대 법안도 협상 도중 가끔 잊었던 걸 꺼내는 식으로 의지가 없더라”고 했다. 이에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우리 법안 얘기를 하면 ‘정부가 반대한다’며 논의를 거부한 게 여당”이라고 맞받았다.

▶관련기사 국회 5개월째 태업…0%대 주저앉은 경제

◇157석 갖고도 호소밖에 할 게 없는 여당

독자 전략 세워 소신껏 행동을"

기사 이미지

김무성 대표

“청와대에 ‘노동법과 선거구획정안 연계로는 한 발짝도 못 나가니 방침을 바꿔달라’고 고백하거나, 야당에 ‘나라를 위해 노동법과 선거구획정안을 함께 처리하자’고 호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새누리당 김용태(양천을) 의원이 26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5개월째인 국회의 답보 상태를 해결할 방안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간 정의화 국회의장 주재로 법안 처리를 위한 여야 회동이 수차례 있었지만 결국은 파견법안을 포함한 노동법안과 선거구획정안에 발목이 잡혀 결렬로 끝났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여당 내에서도 김 의원처럼 “선거구획정안과 파견법안은 별도로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핵심 당직자는 “야당이 파견법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하고 국회의장도 직권상정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일괄처리는 어렵다. 분리처리 외엔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입장을 지지하 는 친박계 인사들은 강경하다. 김태흠(충남 보령-서천) 의원은 “협상이 길어지다 보니 ‘분리 처리’ 얘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19대 국회 마지막인 지금이 아니면 파견법안 처리는 불가능하다”며 “선거구 획정안은 총선 전엔 어차피 될 수밖에 없는 문제니 일괄처리를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확고한 차기 권력자가 눈에 띄지 않는 여당이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해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며 “선거구획정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선 여당(의석수 157석) 스스로 전략을 갖고 소신껏 행동할 필요가 있 다”고 지적했다.

현일훈·정효식·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