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혈액 여섯 팩 SOS…전국 ‘KTX 돌려막기’ 피 마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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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은 ‘헌혈 사랑’ 13일 부산시 금정구 부산대 앞 헌혈의집 부산대학로센터에 헌혈자가 없어 썰렁하다. 겨울방학을 맞아 대학생들의 단체헌혈이 크게 줄어 재고량이 경계 수준까지 떨어졌다. 적십자사는 개인과 가족 단위 헌혈 동참을 위한 홍보 활동을 적극 펴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12일 오후 충남 공주의료원 진단검사의학실. 저온냉장고에 수혈용 혈액 여섯 팩(320㏄)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수술에 사용할 혈액들인데 AB형은 한 팩도 보이지 않았다.

메르스로 미뤘던 수술 크게 늘고
학생들 방학에 단체헌혈은 급감
혈액본부, 커피교환권까지 주며
여성·30대 이상 헌혈 늘리기 온 힘

의료원 관계자는 “지금 AB형 응급환자가 온다면 손도 써보지 못하고 큰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며 “피가 없어 환자가 오는 걸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의 시·군 지역 지방의료원과 개인병원 대부분의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 5일 경북의 한 종합병원. 교통사고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왔다. 당장 수술이 급했다. 환자의 혈액형은 O형. 수혈 팩(320㏄) 30개를 교체하며 수혈했지만 보유분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병원 측은 대구·경북혈액원에 O형 혈액을 더 보내달라고 SOS를 쳤다. 혈액원은 해당 병원에 20팩을 보낸 뒤 대전·세종·충남혈액원에 SOS를 쳤다. 결국 대전에서 대구까지 KTX 편으로 혈액 20팩이 급송됐다.

이희자 대전·세종·충남혈액원 공급팀장은 “대구에서 혈액 재고가 급감했다는 연락을 받고 전용용기에 담아 급히 보냈다”고 말했다. 지역 간 ‘혈액 돌려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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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적으로 혈액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재고가 줄면서 수도권에서는 수요가 많은 A형과 O형 혈액 재고가 이틀치 미만으로 감소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수술 직전 혈액을 긴급 공수해 오는 등 의료 현장에선 ‘피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미뤄졌던 수술이 몰리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겨울에 헌혈이 줄어드는 계절적 특성까지 더해져 상황이 악화됐다. 단체헌혈이 가능한 고등학교·대학교가 2~3개월간 방학이기 때문이다.

 14일 0시 기준 전국 혈액보유량(적혈구제제 기준)은 3.01일분이다. O형과 A형은 각각 2.4일분과 2.1일분에 불과하다. 적정 보유량은 1일 평균 5일분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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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형·A형 재고는 이틀치뿐 혈액 재고가 급감하면서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8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대한적십자사 서부혈액원에서 김석완 공급팀장이 텅빈 냉장실의 혈액 재고를 조사하고 있다. 14일 0시 기준 O형과 A형 혈액 재고량은 2.4일분과 2.1일분에 불과했다. [사진 임현동 기자]

O형과 A형 혈액 보유량이 3일분 미만으로 내려가자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이달 초 전국 혈액원에 주의(Yellow) 단계를 발령했다. 2일분 미만(경계 단계)으로 떨어지면 경계(Orange) 단계로 격상할 방침이다. 혈액 파동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취지다.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단체헌혈은 2014년 44만6054명에서 지난해 41만6372명으로 6.7%(2만9682명)나 줄었다. 헌혈자의 60%가량이 10대 후반~20대 초·중반의 남자다.

이에 따라 혈액관리본부는 여성과 30대 이상 중·장년층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홍보를 강화할 예정이다. 외식상품권·영화티켓·커피교환권을 내걸고 헌혈을 독려하고 있다. 이달부터 헌혈의집 운영을 주말과 공휴일에도 평일처럼 오후 8시까지로 연장했다.

 헌혈은 전혈(全血·일반헌혈)과 성분헌혈(적혈구·혈소판·혈장 등 특정 성분만 채혈)로 구분한다. 전혈은 2개월, 성분헌혈은 14일 단위로 채혈이 가능하다. 1회당 남성은 400㏄, 여성은 320㏄를 채혈한다. 헌혈을 하면 간염·성병·ALT(간질환 지표)·총단백 수치 등을 검사해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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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백병원 이정녀(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헌혈은 조혈작용(피를 생산하는 작용)을 촉진해 더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권장하고 있다”며 “헌혈하는 사람은 곧 건강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주·대구·부산=신진호·김윤호·차상은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사진=송봉근·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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