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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스모그, 철저히 책임 따져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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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성탄절 무렵 한반도로 날아와 '그레이 크리스마스'를 만들었던 중국발 스모그. 이 불청객이 올초 벽두에 또다시 기승을 부렸다. 새해 출근 첫날인 4일에도 한반도를 엄습해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으로 급격히 올라간 것이다.

결국 미세먼지 피해를 우려한 서울시는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닫아야 했다. 누런 먼지로 뿌옇게 변한 하늘, 거북하고 답답한 공기에 시민들은 숨쉬기도 힘들어했다. 곳곳에서 콜록콜록하는 호흡기·감기 환자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중국 측에선 베이징발 스모그가 한국인들에게 치명적이란 증거가 없다며 책임을 외면한다. 우리 당국마저 한국 내 스모그 중 중국 기여분을 추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책임 추궁에 미적거리고 있다. 과연 중국은 책임이 없으며 우리는 그 책임을 따질 수 없을까.

중국이 발뺌하지만 중국 북부에서 형성된 먼지구름이 며칠 만에 한반도로 옮겨오는 건 위성사진으로 똑똑히 판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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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미세먼지를 찍은 위성사진. 이 먼지는 이동성 고기압을 타고 서해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한다.

 게다가 최근 한국외국어대 연구팀이 발표한 ‘동북아 유기미세입자 생성 및 장거리 이동 연구 III’이란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악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팀은 중국발 스모그가 한반도로 넘어오는 길목인 백령도에 장비를 설치해 오염도 변화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중국으로부터 황산염과 함께 미세분진이 들어오면서 산소와 결합돼 질량이 최고 50%나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해를 지나면서 미세먼지 크기가 더 커진다는 뜻이다. 또 2012년부터 2년간 질산염 농도는 계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 내 자동차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빚어진 현상으로 해석됐다.

중국의 법적 책임 물을 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에 책임을 묻고 이에 따른 배상을 받아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의견은 각양각색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관련 국제 조약 부재=국경 넘어 피해를 주는 환경오염, 즉 '초국경환경피해'와 관련,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확실한 조건은 양국 간 또는 다자간 사전합의가 있는 경우다. 즉 양국 간 또는 국제적 조약이 맺어져 있으면 이를 토대로 보상이나 배상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발 스모그의 경우 한·중 대기오염 방지협약이나 동북아 환경보호 협약 등이 체결돼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협약 내에 위반시 보상 관련 규정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는 한·중 간 조약이나 두 나라가 함께 가입해 있는 스모그 관련 국제적 규범은 없는 상태다.

◇국제관습법상의 '무해(無害)의 원칙' = 많은 전문가들은 별도의 조약이 없더라도 중국에게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국제적 규범으로 인정 받는 관습법상의 '무해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중국은 자국 내 수많은 자동차와 공장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엄청난 오염물질을 방출, 인접국인 한국에 피해를 입힌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역시 1996년 "국가가 자국의 관할권과 통제 내에서의 행위가 타국의 또는 자국 영토외의 환경을 존중(respect)할 일반적 의무가 있음은 환경과 관련된 국제법의 내용 중 하나"라고 스톡홀름 원칙을 지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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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국의 책임= 1928년 상설국제재판소는 환경 관련 위법 행위에 대한 구제 원칙은 '원상회복 (restitution)', '금전배상(compensation)', '만족(satisfaction)', '유지명령(injunction)' 등이 있다. 원상회복은 말 그대로 오염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놔야 한다는 것이며 금전배상은 파괴된 환경이나 생태계의 복원 등이 불가능할 경우 이에 따른 손해를 금전적으로 보전하는 것이다.

만족은 원상회복이나 금전적 배상 외에 피해를 입힌 나라에서 공식적 사과나 위반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 등을 통해 심리적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반면 유지명령이란 국제사법재판소처럼 국제법상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관에서 특정 사안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더불어 2001년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법위원회(ILC)는 "대기오염 실태 등 정확한 환경정보를 주변국에 알릴 책임이 각국에 있다"고 천명했다. 중국이 살인적인 대기오염 실태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초국경환경피해, 구제 사례도 있어 

그간 초국경환경피해에 대해 보상이 이뤄지거나 구체적 구제 조치가 내려진 사례가 꽤 있다. 대기오염과 관련된 대표적인 케이스가 캐나다  트레일 제련소 사건, 남태평양 핵실험 사건, 인도네시아 산불 사건 등이다.

◇트레일 제련소 사건= 이 사건은 1930년대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소재 트레일 제련소에서 나온 아황산가스로 인해 일어났다. 가스가 국경 넘어 미국 워싱턴주로 날아가 사과농장을 망쳤던 것이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나선 끝에 관리 소홀 책임을 지고 캐나다 정부가 42만8000 달러를 농장주들에게 배상해 줬다. 양국 간 중재를 맡았던 임시 공동위원회는 향후 피해방지를 위해 아황산 가스 배감축 시설을 설치하고 배출 상황을 꼼꼼히 기록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핵실험 사건= 66년 프랑스가 남태평양 무루로아섬 인근 대기권에서 잇따라 핵실험을 하자 서울~싱가포르만큼 떨어진 뉴질랜드(4200㎞)와 이보다 더 먼 호주(6000㎞)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자신들 영토 내에 핵물질이 쌓여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프랑스 측은 "그렇게 먼 곳까지 방사능 낙진이 날아간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들의 주장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뻗댔다. 하지만 재판소는 "낙진이 쌓이는 사태를 막기 위해 핵실험을 중지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프랑스는 남태평양 대기권 내 핵실험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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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산불(왼쪽)로 인해 생긴 연기가 인근 국가인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면서 쿠알라룸프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는 모습(오른쪽) [사진 중앙일보]

◇인도네시아 산불 사건=인도네시아에서는 매년 대규모 산불이 발생, 이에 따른 연기가 주변국으로 퍼져 호흡기 장애 등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또 시계가 나빠지면서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유례 없이 큰 산불이 일어난 97·98년에는 많은 피해가 발생해 손실액만 최고 93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피해가 극심해지자 2002년 인도네시아를 뺀 말레이시아·싱가포르·베트남 등 9개 ASEAN 회원국들이 산불 방지 및 피해 축소를 위한 '연무협약'을 맺기에 이른다.

중국발 스모그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내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늘로 넘어오는 황사나 스모그를 어쩌겠느냐"는 체념론이 부지불식 간에 우리들 머리 속에 박혀 있다.  환경보다 발전을 중시해온 그간의 세태도 중국발 오염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갖게 했을지도 모른다.  "중국사람도 먹고 살겠다는 데..."하는 동정론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발 오염물질로 인해 우리가 입는 피해 정도는 인내의 한계치를 넘어선지 오래다. 미세먼지가 국제 환경기준을 넘어서는 날이 한해  일에 달한다. 감기 등 호흡기 질환, 폐질환 환자는 중국발 스모그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아무리 한국이 천연가스 버스를 도입하고 대기질 정화에 노력해서 중국이 지금처럼 오염물질을 뿜어대면 말짱 헛 일이다.

국제적 사례에서 보듯, 초국경환경피해를 야기한 국가는 이웃나라에 책임을 지는 게 원칙이다. 문제는 그 피해의 원인과 정도를 정확히 규명하는가다. 지금까진 국내 대기오염에서의 중국 기여분을 정확히 가려내지 못했다. 또 미세먼지가 국민 건강에 끼치는 해악의 수준도 밝혀져야 한다. 이같은 어려움이 극복되면 중국에 대한 책임 추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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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한국 대기오염의 대부분은 중국이 아닌 내부적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미세먼지 발생은 중국의 기여분이 30~40% 정도이며 나머지 60~70%는 국내 자동차, 공장, 건설 현장 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밖에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는 주요한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지난해 3월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한국내 석탄 화력발전소 53기에서 나오는 초미세먼지로 매년 최대 1,600명이 조기 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총 전력 생산량 중 석탄 화력발전소 비중이 39.2%나 된다. 한국은 중국·인도·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의 석탄 수입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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