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제 발등 찍을 가능성 큰 북한의 무모한 핵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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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어제 오전 전격적으로 4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발(發) 인공 지진파가 감지된 지 두 시간 만에 북한은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주변국들은 물론이고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추가 핵 도발의 자제를 촉구해 온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북한의 30대 초반 젊은 지도자는 핵실험 단추를 눌러 버렸다. 북한의 마지막 버팀목 구실을 해 온 중국마저 적(敵)으로 돌리는 위험천만한 도박에 ‘다걸기’를 한 셈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회심의 승부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발등을 찍는 치명적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핵 개발이나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연설의 대부분을 경제에 할애했다. 36년 만에 열리는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미사일이나 핵 도발을 자제하고 대내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는 신년벽두 핵실험으로 완전히 허를 찔렀다.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한·미 군사정보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충돌로 중동에 쏠린 국제사회의 시선을 단번에 북한으로 돌려놓았다.

 북한이 실시한 4차 핵실험의 정확한 규모와 성격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과거에 비해 폭발력이 커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의 발표대로 소형화된 수소탄 실험인지, 아니면 그 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 실험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어느 경우든 북한의 핵기술 수준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만일 북한이 소형화된 수소탄 개발에 성공했고, 이를 북한이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장착하는 단계까지 간다면 북한의 핵 위력은 완전히 차원이 달라진다. 미국의 안보를 실체적으로 위협하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핵 도박은 핵무기의 기술 수준을 과시함으로써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는 데 1차적 목적이 있어 보인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더라도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의 핵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을 수 있다. 아울러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압박해 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북한은 핵 협상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을 미국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국제사회는 한동안 북한 핵 문제로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안에 포함된 ‘트리거(trigger) 조항’에 따라 안보리는 자동적으로 북한에 대해 ‘중대한 추가조치’를 취해야 한다. 강도 높은 추가 금융·경제 제재가 논의될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도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제재를 통해 북한의 행동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북한 핵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나설 수밖에 없다. 북한은 중국에조차 알리지 않고 이번 핵실험을 단행했다. 모란봉 악단의 일방적 철수에 이어 4차 핵실험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인내는 한계를 시험받고 있다. 북·중 관계의 전면적 재검토를 촉구하는 중국 내부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중국이 식량과 에너지를 포함해 대북 교역을 전면 중단할 경우 북한은 치명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대선 국면에 있는 미국도 전처럼 안보리 제재 정도로 넘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요구하는 공화·민주 양당 대선 주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북한 핵 문제가 대선 쟁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비록 임기 말이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재검토하는 처지에 몰릴 수도 있다. 요컨대 미국도, 중국도 이번 도발로 북한에 대한 전략적 결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과거처럼 적당히 그냥 넘어간다면 가뜩이나 재무장을 가속화하고 있는 일본의 아베 정권이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한국이나 대만에서도 핵 개발 요구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결단이 대화와 압박 중 어느 쪽으로 가닥을 잡더라도 김 위원장 뜻대로 되긴 어렵다고 봐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체제의 존립이 위협받는 위험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김 위원장의 이번 도박을 자충수로 보는 것이다.

 남북관계도 한동안 ‘올스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국자 회담은 물론이고 민간 차원의 교류도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여야를 막론하고 대북 강경론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경제 발전을 노리고 있는 김 위원장으로서는 큰 손실인 만큼 이 또한 자충수다.

 김 위원장의 무모한 도발로 또다시 한반도는 비상한 국면을 맞았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호들갑을 떨 것도 아니다. 특히 여야를 떠나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금물이다. 단호하면서도 차분하게 이 국면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